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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투성이에 반기를 들다 주주의결권을 행사하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라며 우리더러 민주사회 시장경제 일원이 되라고 스트레스를 주는데 어차피 소액주주가 의미있는 의견을 피력할 것도 아니고 솔직히 주총의결안 상정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겠으며 그럴 시간을 투자할만큼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내가 그 회사를 지극정성으로 육성하는 데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면, 결국 장기건 단기건 투자시세차익으로 이문을 보는 게 목적 아닌가? 그럼 그 회사가 주주총회에서 뭘 어떻게 결정하든 난 계절과 날씨를 보며 우산을 걷고 펴며 내 투자를 살피면 될 일이다. 조언은 고맙게 걸러 듣겠지만, 개미더러 뭐 어찌 투자하라고 시키지 마라. 기관 투자자들이 나름의 그러한 원칙이 있듯 개미들도 그러하다. 더보기
초라한 고상함의 민낯은 언제 반성할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독서록 - 주마등 임종 연구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삶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는 비극을 더 나아보이게 하진 않는다. 존엄사는 과연 우리를 존엄하게 해주며 안락사는 과연 우리를 안락하게 해주는가? 충동적 구매로 사흘만에 읽은 근미래의 상상이 던지는 고민은, 인문사회학의 뜨거운 이슈나 '정의란 무엇인가'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2021.03.14 더보기
아빠랑 독서록 쓴 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온실의 교육관 온실 속 화초는 온실 밖 세계의 존재를 모른다. 선택지는 두 가지. 평생 온실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그 세계를 인지한 후에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거나 아주 어릴 때 바깥을 겪거나 전자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약속할 수 없는 방법이다. 후자는 자칫 어린 상태에서 죽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그럼 어느 시점에 어떤 준비를 하고 온실을 나서야 하는가? 그에 대한 관점이 바로 교육관이다. 더보기
존재에 관한 사색 점심 먹다가 몇 가지 떠오른 단상을 남긴다. 반성할 것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의 의미가 갑자기 와닿았다. 세상에 나 홀로 있다는 고독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라는 뜻이었다. 물리학은 모든 현상과 논리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평행우주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건 내가 세상 모든 '삶'을 반드시 1차원의 시간 축에서 순차적으로 겪어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난 여기에도, 저기에도, 파동처럼, 입자처럼, 각각, 그러면서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 우주 안에서, 그리고 서로 다른 우주 간에서. The Egg에서 환생하는 그 남자에게 (아마도 신이었을)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은 그 무수한 삶을 살고 나서 우리와 같이 될 겁니다." 그.. 더보기
오늘도 수고했어 매일 매일 잘 지냈어. 더보기
이도커피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