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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브런치 같은 소리

아침 댓바람부터 울린 카톡 알림을 보고, 얘는 왜 차단해도 신고해도 계속 뜰까 생각을 한다.
올라온 글들이 예사 그랬듯, 오늘도 첫 문장은 선정적이다. (클릭 유도하는 기법을 어딘가서 아웃소싱이라도 한건지)

읽은 첫 반응은, "지랄하네"였다.

못 쓰는 이가 태반인 세상에서 '당신은 사실 글을 잘 쓴다'라 말하는 건 '독려'의 메시지다. 그리 독려하며 민중계몽에 앞장설 요량이었다면, 일전의 심사에선 '당신은 좋은 글을 쓸 것으로 보이지 않아 작가 신청 탈락입니다'라고 싹수를 자르는 언행이 가능했을까? (섭섭해서만 하는 소린 아니다.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하는 게다)
물론 작가 신청과 브런치 글 쓰는 건 별개다. 그럼 작가 지원 비용은 아까웠던 모양이지... (난 사실 종이책 출판을 원한 것도 아니었음)

가만 생각해보면, 티스토리는 이런 류의 홍보를 하지 않는다. 같은 회사의 유사 서비스인데 왜일까? 혹시 이런 유사점 때문에 브런치 사업팀이 들볶여 공중분해될 상황일까?

자극적 문구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뒤이어 던진 첫 문장은 가히 역설적이다.
조금 전 '당신은 글 잘 쓴다'고 추켜세우더니, 곧바로 '글 잘 안 써지시죠? 글감이 없으신가요?'라고 되묻는다. 당신이 글 잘 쓴다고 말하던 좀 전의 챗봇은 곧장 퇴근이라도 한 건가?

글을 쓴다는 건, 기본적으로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 이전에 글을 쓰고픈 욕구가 밀려 올라와야 한다. 그 때 각종 수사와 표현력, 배경 지식과 유려한 말솜씨가 도구와 양념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연필을 잡고 종이 위를 바라보며 뭔가 끄적이긴 해야겠는데 뭘 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글 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능력이나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상황 말이다.) 배도 안 고픈데 식당에 들어가 앉아 메뉴판을 계속 바라보고 옆 테이블을 흘낏거리면서 뭐라도 식욕이 솟아나길 기다리는 것과 진배없다.

경험하고 생각하라. 다채롭고 화려한 경험일 필요 없다. 심연을 꿰뚫고 철학의 경지에 이르는 생각일 필요 없다.
우리는 매 숨쉬는 순간 삶이라는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고, 그대 삶은 늘 거대한 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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