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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스웨덴에서 한국인처럼 일하기

스웨덴에도 야근이 있다.

물론 알아서 더 일하는 것이고, 매니저의 승인이 따로 필요 없기도 하나 장기간 야근한다면 1-1 면담에서 논의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뭐하는 짓이냐'가 아니라 '원인이 무엇이고 무엇을 보완해 주면 야근 안 할 수 있겠느냐'에 관한 논의)

 

문제는, 한국 기업에서 오랜 시간 정규직으로 일하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이게 '포괄임금제'라는 이름으로 어느정도 수용해야 하는 사회적/법적 환경에 놓여 있던 사람 입장에서 한 가지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 계약서를 쓸 때 Non-exempt인지 Exempt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사실 그 용어 자체가 낯설다. 한국의 정규직은 초과수당 자체가 없고, 정규근무 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연봉제를 적용한다. 야근이 일상인 회사에선 저녁 식대를 주거나 야간 교통비라는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정산해 주기도 하지만, 이는 근로에 대한 임금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Exempt 조건으로 근무해 왔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할 만큼, 한국의 근로 계약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문서와 같다.

어쩌면 스웨덴 회사도 이를 알고 악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아시아계 사람들은 (특히나 처음 온 인간들은) 관습적으로 hard-working하며 야근하며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헌신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어쨌거나, 지난 일년 간 엄청난 야근/철야를 해대며 부족함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내 계약은 Exempt였으므로 하나의 보상도 받지 못했다. 매달 금전적 보상을 하지 않더라도, time bank의 형태로 적립해서 추후 휴무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국가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이는 Non-exempt 계약자에 한한다. 왠지 육체노동자의 시급 계약에만 적용될 듯 보이지만, 정규 내근(?)직에도 적용되는 옵션이다.

Exempt 계약은 통상 10% 정도 급여를 올려받는다. 추가 휴가도 부여 받는다. 더 우수한 인재라서가 아니라, 어차피 어느정도 오버타임으로 일하게 될 걸 미리 감안한다는 뜻이다. 매니저급 이상의 사람들은 대개 이 근로조건이다 (아니었더라도 Exempt로 근로계약을 바꾸게 된다), 다만 이 계약으로 입사한다는 게 머잖아 매니저를 시켜준다는 얘긴 아니다. 어쩌면 이직 처우 협상 시에 연봉 좀 더 올려달라고 하면 이 조건으로 계약하면서 10% 올려주는 수를 쓸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은 어차피 야근하는 경우가 많으니 애초에 이 계약으로 진행할 지도 모른다. 나는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한국 근로 방식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보니, Exempt 조건이랄 게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았던 것 뿐이다.

 

스웨덴에 오는 사람들은 워라밸 생각하고 온다. 이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일하는 방식. 한국에서 퇴근 버스 타려고 6년간 정시 퇴근 해 봤더니, 낮 시간을 엄청난 밀도로 사용해야 했다. 퇴근 시각이 임박하면 쫓기기 일쑤였다. 일과 계획을 잘 세우고, 자기주도적으로 업무를 해나가지 않으면 스웨덴에서 홀로 야근하고 집에 와서 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반엔 진도가 잘 안 나가고 매사가 느리게 진행되기 쉽다. 또한 나 스스로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게 결국 업무이니,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Non-exempt로 계약하는 것도 나름 보상 면에선 합리적이다. 하지만 매사엔 장단점이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다른 시간대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8-5 또는 9-6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스스로 +/-를 고려해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맡은 일을 기대 이상으로 해내고만 있다면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