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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사다리 걷어차기는 진정 악인가

앞서 나간 자들이 게임의 룰을 지배하고 승자독식을 유지하고자 규칙을 바꿔 나가는 것이 박애주의 인류애에 반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적지만, 이걸 얍삽함이나 교활한 속임수라고만 치부할 일인가 싶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어기는 일등 이등이 중국과 인도라던데, 이들도 마음껏 오염물질 배출과 탄소증가 기여를 즐기며 경제성장 하도록 두는 것이 모든 국가를 배려하고 인류의 평등권을 존중하는 길이 맞나? 그럼 지구 상 마지막 개발도상국이 모든 오염 활동을 마친 뒤에야 우린 사다릴 걷어 찰 명분이 생긴다. 그럴 바엔 지구온난화를 우려한다는 논제 따윈 애초에 집어치우는 게 낫다. 적시에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생기고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 점차 황폐화 되자 관리공단은 입산을 통제하고 취사를 금지하며 휴식년을 시행한다. 근데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이 들고 일어난다. 사다리 걷어차기 아니냐고. 맞는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옳은 논리는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언제나 모두가 완전한 만족을 하는 평등점을 가리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어난 사안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달리 가져가고, 역할의 차이를 두는 것이 인과응보의 평등이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공정과 정의란 이런 식일 수 밖에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언제나 사악할까.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걷어차지 않으면 모두 빠져 죽는 경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