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xcerpt

당신이란 말은 어쩌다 말싸움 용어가 되었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1390557

 

[찰나의 우리말] '당신'은 '너'의 높임말 아닌가요?

[BY 국립국어원] 하루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공대 교수님을 만났다. 그 교수님은 반색을 하며 인사를 ...

m.post.naver.com

 

재미있는 언어 해석이었다. 하지만 뭔가 끼워맞추는 느낌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길래 '참지 못하고' 댓글을 남겼다.
나중에 관리자가 삭제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옮겨놓는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인생의 가장 최상 직급이나 직업의 호칭을 '전'까지 붙여가며 불러주는 기이한 존중의 문화로 남았나 봅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자존감으로 쌓아온 생애의 탑이 무너진다는 관념이 뿌리깊게 존재해서요. 정말 안타까운 건, 그런 문화 때문에 아끼고 아끼며 숨겨둔 자신의 '이름'은 정작 많이 불리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는 거지요. 불리지도 못하는 이름이라, 가련해 보이기 까지 하네요.
근데 한 가지 정정하시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어에서 호칭어가 발달하고, 시의적절한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호칭을 호칭대명사나 이름 대신 불러주는 건 문화적 배경 때문이지 '한국어 문법'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관용적 화법을 문법이라고 볼 순 없으며, 심지어 길에서 당신이라 부르며 싸운다고 화법이나 문법에 어긋났다고 볼 수도 없으니까요. 상황에 부적절한 화법 정도라면 모를까요.
그리고 '맞는다'는 문법 상 틀린 표기입니다. '맞다'라고 쓰셔야 합니다.

(저 단어 잘못 쓰는 사람들 많은 건 아는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면서 우리말 문법을 틀리냐...)

 

근데 난 아내에게 항상 '당신'이라고 부른다. 부를 땐 '여보'라고 부르고, 지칭할 땐 '아내'라고 부르지만, 호칭은 언제나 '당신'이다. (결혼 전엔 이름을 불렀지만)
이건 순전히 나의 아버지로 인한 것인데, 내가 함께 살았던 그분의 삶에서 당신께선 나의 어머니를 항상 '당신'이라 부르셨다. 뭐, 다투실 때도 그리 부르셨지만 언제나 '여보', '당신'이라 부르셨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언어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아마 나의 아이들도 나에게 물려받아 그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겠지... (결혼 한다면 말이다)

하여, 난 우리나라에서 '당신'이 싸움용 2인칭 호칭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를 함부로 부르는 대명사라 문화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고도 생각 않는다. 불특정 대상에게 쓸 때만 용인되는 표현이라고도 생각 않는다. 논리는 그럴싸하지만 개인들의 역사와 가정의 문화 등을 면밀히 고민하지 않고 결론 내린, 궤변이다. 어째서 저리 오만하게 재단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상대를 '당신'이라고 부를 때 시건방지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대화의 상황

말투와 억양에 담긴 감정 상태

듣는 사람의 선입견 (당신이라는 말을 쓰며 싸우는 걸 주로 보고 자랐다는 방증일 수도)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호칭을 놔두고 쓸 때

따위가 되겠다.

스승님이나 부모님을 두고 엄연한 주요 호칭이 있는데 '당신'이라 부르면 패륜아가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린 '당신'을 사용하면서도 상대가 오해하지 않고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 수 있는 상황과 분위기와 문맥과 표현을 만드는 법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그게 한국어를 제대로 쓰는 방법이고 언어에 대한 도리이다. 사용하는 도구를 엉터리로 쥐고 쓰면서 몹쓸 도구라 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Excer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상이라는 환상  (0) 2024.03.29
헤게모니를 놓지 못하는 민족  (0) 2024.03.22
시동 잠금장치를 반대하는 목소리  (0) 2024.03.08
어쩌란 말인가  (0) 2023.12.27
탕후루 기사  (0)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