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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짧은 생각들 여럿

옛날 가수들이 모두 노래를 잘 불렀던 건 아니었다. 요즘 가수들과 노래 맘에 안 들어했는데, 옛 것이라고 마냥 훌륭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대학시절 가요 몇 개를 들었더니 애플뮤직에서 비슷한 것들을 이어 틀어주는데, 친구들끼리 노래방 가서 악쓰며 부르는 것 같은 노래들에 약간 놀랐다. 그 땐 무슨 기준으로 가수가 된 거지? 보컬 트레이닝 같은 게 없던 시절인가?
룰라의 천상유애는... 약간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표절 이슈가 없었더라도, 가수로 존속할 수 있었을까 싶다.
 
가족들이 쓰던 수건을 빨았다. 세달 반만이다. 이젠 내 생활 냄새가 더 배어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다음 단계에 나아가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난 수요일 수영장에 갔을 때, 조금씩 하다 보니 1킬로미터 조금 넘게 하고 왔다. 끝나고 나니 온 몸이 덜덜 떨리더라. 그 정도로 격한 운동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중간에 600미터 쯤 되었을 때, 상당히 힘들었다. 그건 분명 육체적 스트레스 때문이었겠지만, 마치 정신적인 고통과 비슷했다. 아, 그건 물리적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또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앞이 캄캄할 때 엄습하는 정신적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스트로크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리 생각을 하더라. "이것도 결국 지나가겠지. 그냥 생각을 내려놓고 하다보면."
그 때의 '지금 순간에만 집중하자'는 요즘의 격려 '오늘을 살아내자'와 맞닿아 있는 듯 했다. 지금 눈 앞의 일에 집중하자, 이게 아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정신을 좀 내려놓자는 느낌이었다. 매 순간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고 달리고 회고하고 급속충전하고 다시 달려나가야 올바른 청춘이며 인생이라는 모토는 지겹다. 자본주의라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일꾼들의 자발적 착취를 반복하는 그 탐욕스런 구호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잠시 끄고, 그냥 내 심장 소리와 호흡만 느끼며 지금 당장을 살아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세상이 멸망해도 우선 내가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비난받을 생각은 아니다. 우린 박애주의 전사가 아니므로. 신이 있다면 각 개인을 인류사의 소도구로 활용하려 태어나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 스트로크는 어떤지, 머리는 적당히 돌리는지, 속도는 만족스러운지, 따위 생각 없이 그냥 휘적휘적 허우적대다 보면 레인의 끝에 도착하겠지, 언젠가는, 아님 말고, 알게 뭐야. 그런 마인드도 나 개인에겐 필요하고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의외로 우린 '살아남는' 일에 자주 직면한다.
나는 치솟아 날아오르는 청춘들에겐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아픈 청춘들이 와닿는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혼자 수영하면 훨씬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시선도, 남들의 속도도, 남들과 부딫힐까 걱정도 없는 곳에서. 나는 확실히 그런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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