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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스웨덴은 선진국인가?

과거의 스웨덴은 내가 평할 입장이 못 된다. 그러나 현재의 스웨덴은 분명히 과도기적 선진국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서 과도기란, 중진국/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향하는 것만이 아닌 반대 방향의 퇴화 역시 의미한다.

 

스웨덴이 근대 국가 시절까지 사회주의국가로서 토대를 잘 닦아놓았다는 건 공통의 의견이라 보인다. 하지만 지금 주력 산업으로 성장하는 부가가치 직군에서, 또 이들의 가족들이 투입되는 직업군에서 토박이가 아닌 외래유입 인구가 상당해지고 있다는 점은 스웨덴의 민족적 정체성을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변형하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사회문화적 수준이 어디에 이르렀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명료히 답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정 지역에 대해 논하게 되면, 이민자/난민들이 주민구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수록 기존 스웨덴 주류 문화와 다른 특성이 더 두드러지게 된다. 더구나 그 지역의 스웨덴 원주민들 역시 경제적 여건이 이민자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문화적 선진국에 으레 기대하는 교양의 수준은 갈등을 빚는다.

 

오늘 Lundbybadet, 룬드비 수영장에 다녀왔다. 몇 번 갔다오면서, 유색인종이 많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스웨덴에서 나고 자랐을지라도, 사회적 계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행동거지에서 문화적 뿌리는 유지된다. 특정 인종이나 문화권이 우등하고 열등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적 합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하는 행동이, 때론 새로 내딛은 사회의 관습법이나 상식에 배치되더라도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중국인들의 모습에 세계인들이 갖는 선입견이 그 단적인 예인데, 두드러지는 샘플이 대표성을 갖는 사례가 된다는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유분방하고 왁자지껄한 문화가 근본적으로 상스럽거나 천박해서 유래하는 것만은 아니다. 유럽에 유입된 많은 유색인종 중, 유난히 다수를 차지하는 부류는 인도인인데,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듯 시끄러이 떠들고 레인 운영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다. 안전요원 여성조차 같은 언어(같은 인도인이어도 지역이 다르면 언어가 다를 수 있다. 물론 힌디 공용어를 쓴 건진 모른다)로 잡담을 하며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실상 중국인들이 타 국가에서 보이는 떼거지 행위를 보이는 것이었다. 지난번부터 느꼈는데, 직장 동료들끼리 몰려와 물놀이 하다가 사우나 하고 샤워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짐작도 된다. 아무튼 그건 뭐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수영장의 탈의실 입구엔 신발을 벗으라는 픽토그램이 붙어있다. 근데 경계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어디쯤에서 벗어야 하는 건지 사실 잘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나도 어정쩡한 중간쯤 벗고 들어가 신발 보관함에 넣곤 한다. 사람들에 따라 더 미리 벗기도, 좀 더 나중에 벗기도 한다.

근데 오늘 보니, 아까 모여 놀던 인도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유색인종들은 탈의실 안에서 신발을 신고 벗는다. 심지어 사물함 안에 신발을 넣었던 흔적도 종종 보인다. 옷과 가방 넣는 곳인데. 사실 스웨덴 길거리는 전혀 깨끗하지 않다. 개똥도 널려있고, 흙도 많고, 온갖 오물도 종종 보이는데 잘 치우지도 않는다. 그러니 스웨덴 원주민들은 집안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 근데 유색인종들, 아니 타문화권의 사람들은 자기들 기준으로 사회 인프라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스웨덴 원주민들 역시 이런 사람들의 행동이 불편한 것 같지만, 싫은 내색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니 수영장 탈의실에서 그냥 자신의 슬리퍼를 따로 신고 다니는 식으로 해결을 하고 있다. 그런 걸 준비하지 못한 나는, 샤워실에서 사물함까지 걸어오며 더러워진 내 발바닥을 세수 수건으로 닦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실정법을 어기는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수준에 걸맞는 상식 규범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 사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동체 가치란 그런 면에서 시작한다. 문화적 다양성이란 이렇게 양면성을 띤다. 사회질서와 문화적 전통, 가치가 섞이며 진화하는 것인지, 실체를 잃고 잡탕이 되어 본래의 색깔과 가치가 오염된 채 제멋대로의 시궁창으로 변질되는지는 사실 미묘한 갈림길에서 정해지는 것이다. 본연의 가치를 사수할 강한 의지나, 다수의 상식으로 유지할 만한 기존 인구의 지배력이 없다면 외래종에 의해 문화적 생태계가 끝장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스웨덴의 미래가 선진국일까? 그건 현재의 방향성으로 봐선 긍정적이기 어렵다. 그렇다고 외래유입종들을 솎아내거나 교화시킬 수도 없는 이 나라의 현실에서, 어떤 정책으로 경제적 현상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까지 보살필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길목에 서서, 남의 나라 관찰과 내적 관찰을 통해 심사숙고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종국에 큰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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