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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말장난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이른다.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를 열심히 팔면 팔수록 배터리 업체와 더 많은 수익을 나눠야 한다는 얘기다. 완성차 업체가 자체 배터리를 쓰는 게 아니면 수익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 중앙일보 2021년 9월 30일 기사 중


일단 독자를 희롱하는 말장난은 아니라고 보자.
원가구조라는 건 하위 외주 생산품을 모두 포함해 결정된다. 현대차든 폭스바겐이든 스스로 너트 하나까지 다 생산하지는 않는다. 요즘 문제가 된 차량용 반도체는 같은 상황 아닌가? 내재화 비율이 높아지면 원가수익률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기술경쟁력이 강화되긴 하겠지만, 그건 상생과 에코시스템을 통한 산업 부흥과 고용율 개선을 기대하는 정부의 바람에 어긋난다. 그리고 완성차 업체는 대부분 대기업인데, 정책적으로도 하위 시스템이나 부품 조달은 독점이나 계열사 몰아주기를 금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자재를 스스로 조달하면 투자 및 유지 비용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그걸 운용하는 인원들의 고용 계약은 또 어떤가? 알짜 고부가가치 부문이 아니라면 대기업 완성차 회사가 굳이 내재화할 필요가 없는 현실적 이유는 많다.

이런 설명 다 빼더라도 앞선 기삿글은 단숨에 반박이 가능한 궤변이다.
차를 열심히(이걸 뭐하러 강조하지?) 팔면 타이어 업체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 유리공급처와 이익을 나눠야 한다. 시트 제조사와 나눠야 한다. 내장재 업체와 나눠야 한다. 요즘 핫한 전장 회사들과는 꽤 많이 나눠야 한다(그래서 아마 이 부문은 내재화를 할 것이다. 산업 파이를 키우든 말든, 상생이고 뭐고)

설령 배터리가 차 가격에서 가장 비싼 외부조달 서브 시스템이라고 하자.
전기차 생산 회사가 배터리 원가보다 싸게 단가 구성을 할까? 전기차는 왜 아직 이리 비싸서 보조금 축내느냔 핀잔에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린 건 아닐까? 내재화 하고 싶지만 아직 못한 걸로. 사실 현대차는 셀을 제외한 배터리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계열사에게 독점시켜줬다. 우는 소리 낼 입장은 아닌 것이다. 훗날 수소차가 주력이 되거나 배터리 셀을 자체 조달하게 되면 그 원가 비중이 여전히 40% 달한들 작금의 불평을 할까? 언제나 남의 몫일 때에만 배가 아프고 비합리적인 것이다.

차량의 전동화 설계에선 엔진이나 배기순환 같은 기존 내연기관 관련 장치가 사라진다. 그 비용 비중은 얼마일까? 그게 30~40%에 달한다면, 지금의 전기차가 높은 가격을 고수하는 진짜 요인은 완성차 업체의 개발/투자비를 회수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알리고 싶은 것만 목청 높여 외치고 숨기고픈 일은 다함께 함구하는 건, 그 역시 왜곡이자 미필적 거짓이다.

기사에서 이런 부당한 기운의 글을 담을 땐 완성차 업체에 한 가지 확인을 받아야 옳다. 만약 배터리 가격이 내려가면 그만큼 차량의 소비자 가격도 내릴 것이냐고. 담당자는 현실의 불평에선 명료했겠지만, 미래의 다짐에선 아마도 불분명하게 회피할 것이다. 지금까지 팔아 온 차량들의 판가가 공정하고 정당하며 청렴(?)했는지 스스로 증명할 의사가 없듯이.

배터리든 뭐든 하나의 부속 재화나 부속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투입된 긴 노력과 인고의 투자는, 친기업성향이라는 기득권 언론에서조차 이리 가벼이 다뤄진다.
하기사, 먹이사슬 최정점에 똬리를 튼 그들간 맺어진 연대의식에겐 그 아래 있는 누구든 '고부가가치일 리 없는 하찮은 하청'일 뿐이며, 감히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건방진 도둑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결국 독자를 희롱하는 말장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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