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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숲 속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못 들은 건 당신 뿐이다.

"나는 너를 모른다. 따라서 너는 세상에 없는 거야."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 논제는 사실 다음의 오랜 논제와 맥을 같이 한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졌을 때, 그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 나무는 쓰러진 것이 맞는가?"

소통과 관계를 강조하는 많은 글에선 위 논제의 답을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그건 물리학적으로 - 심지어 확률운운하는 양자역학을 들이밀어도 - 당연히 '그렇다'이며, 인문학적인 어떤 관점을 내세워도 '그렇다'가 답이어야 한다. 여기선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양자역학적 사고 예시로 종종 거론하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달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다. 그것도 늘 있던 그 자리에'라고 답해야 한다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확률적으로 가장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보존 법칙에 따라 어딘가에 존재해야 하는 달은, 가장 높은 확률의 위치에 존재할 것이고, 그건 베이즈 확률에 따라 당연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고 수식적 증명이 가능한 '그 곳'에 있을 것이므로. "갑자기 사라질 확률보다 그 곳에 계속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건 지극히 물리학적 표현이며 논리적 귀결이다.
(사실 양자역학의 파동 함수는 달이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위 달 이야기처럼, 숲 속 나무 역시 현상학(이게 뭔지 모르겠다만)적으로 존재하며 쓰러질 때 소리를 냈을 것이다. 나무를 쓰러뜨린 외력이 작용하고, 물리법칙에 따라 쓰러졌을 땐 '지극히 당연하게' 충돌과 마찰에 의한 소리가 발생한다. 이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가설을 반증함으로서 가능하다.
근데 숲 속 나무 글을 인용하는 수많은 글에서 읊는 감성 논리로 따져보아도, 그들의 '아니다' 주장에는 일말의 동의를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논거는 참으로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숲 속 나무는 혼자 태어나 살아왔는가? 숲 속에 아무도 없다는 건 뭐가 없다는 건가? 아무도 듣지 못했다는 건 누가 듣지 못했다는 건가?

그래, 인간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그 얄팍한 오감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초라한 유기체가, 우주의 여타 구성요소를 존재하네 마네 마치 신격이라도 된 양 판정한다는 의식 흐름이 정말 봐줄만 하지 않은가? 이건 한살바기 앞 까꿍놀이처럼, 자신의 인지 사고 능력을 벗어나면 이후를 얕은 경험적 한계로 단정하고 마는 유치함이다.

긴 삶을 끝내고 쓰러지던 나무의 곁 동무들은 다른 나무들, 그루터리 언저리의 이끼들, 크고 작은 곤충과 동물들, 날아왔다 머무는 새들만이 아니다. 인간 없이 수십억년 잘 살아온 숲에게 '우린 못들었으니까 너의 죽음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모욕을 할 셈인가? 사막 한 가운데서 쓰러지는 나무도, 한 마리 노란 뱀의 배웅은 받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멋들어진 말로 "우리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호소하며 주목받고 싶은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숲 속 나무의 쓰러짐에 대해 형이상학적 해석의 탈을 쓰고 주제넘게 본질을 호도하는 결론을 내리지는 말자. 인생의 첫 사춘기에 쓰는 삶에 대한 감상이라면 몰라도.

숲 속 나무는 쓰러졌다. 그걸 못 본 건 당신이고, 당신 때문에 쓰러진 나무가 없던 것이 되거나 세상이 이리저리 바뀌는 건 아니다. 당신의 인식 범위가 인지의 종류와 깊이를 결정하겠지만, 그게 영향 주는 세상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리고 사실, 숲 속 나무는 쓰러질 때 당신이 알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나무는, 숲은, 자신의 삶으로 이미 충분히 바쁘고 벅차다. 그건 비단 숲 속 나무 뿐 아니라, 남의 인생 평가하는 수많은 떠벌이들에 인용되는 삶들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숲 속을 모두 살필 수 없다는 건 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숲 속엔 수많은 나무가 매 순간 태어나고
또 쓰러진다는 걸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살피지 못하는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을 내어놓을 소중한 촌음을 아껴서 각자 제 삶에나 충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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