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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다른 색깔의 같은 그림

불확정은 부당함보다 위험하다.

특히 그것이 정의로움을 표방한다면 더더욱.

 

과외에 대해 대다수가 사회적 합의로 수십년간 경주하고 있을 때,

어느날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여 느닷없이

"과외해서 성적 올린 놈 50대씩 맞는다"며 몽둥이질을 하는 건 그나마 봐 줄 수 있다.

"과외로 올린 성적이 떨어질 때까지 맞는다"며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며 시험을 이어간다면,

과연 그 속에 살 수 있겠는가?

나는 그걸 어떻게 정의로움과 공평함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어느 선까지 균일해져야 공정한가?

 

지금의 정부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진압군을 보낸 당시 정부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일부의 국민은 자신들과 같은 공동체로 여기면서 꾸준히 먹여살려주고 성장시켜주면서

일부의 국민은 자신들이 타도해 혁명의 횃불로 지져내야 하는 고약한 쓰레기처럼 손가락질 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정을 돌아보는 것도 아니고, 섬세하게 가려내는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으면서,

이쯤에서 내려치면 대부분의 살찐 기득권을 겁박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중에

약간의 억울한 희생은 원래 세상 이치 아니겠냐, 따지고 보면 너도 별반 다르지 않으므로 억울할 것도 없다,

어디서 긁어온 건지 알 수 없는 숫자들로 멋대로의 선을 그러놓고는,

이쪽은 지켜줘야 할 약한 사람, 착한 사람

저쪽은 찍어내야 할 약은 사람, 악한 사람

지금 정부가 밀고 있는 이 이분법적 대결구도는 그들이 점유해 온 오랜 구호 속 '부당한 차별과 탄압'에서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 그림일까.

 

'파'가 다르다고 다른 부류가 아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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