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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생

밖으로 나가는 바가지에게 고함

누군가 외국 여행을 간다고,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았다고, 집 값이 올랐다고, 자녀가 우수한 성적을 냈다고 자랑하면서 (수익이나 기쁨을 베풂으로 나누진 않고) 그 '소식'만 알려줄 때, 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컴플렉스에서 비롯한다. 자존감이 낮아서, 주눅들어서 살아온 나날에 움츠렸던 자신을 드높여 주고 싶은 그 마음은 오로지 자신을 돌보고 싶어하는 가련한 심정이 앞선 탓이기에, 배려나 겸손을 못 배운 철부지가 산타 선물 자랑하는 것 마냥 눈감아 주고 들어주는 아량을 베푸는 것이 좋다.

 

반면, 굳이 자랑거리까진 아닌 소식을 미주알고주알 알리는 사람도 있다. 남의 이야기를 주로 옮기는 이들이야, 정보통으로서 존재 가치를 인정 받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라 한다면, 자신의 주위 변화 소식을 자꾸 알리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심리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내 내가 찾은 답은, 불확실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이란 것이다.

 

전도를 필사적 사명으로 삼는 유일신 종교들을 생각해 보자.

불교는 깨달음이나 생활 속 실천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식당'을 권하듯 권고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교, 특히 기독교는 상당히 공격적 마케팅으로 전도를 펼치기에 가히 전파의 종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들은 왜 자신의 구원과 영생만큼이나 주위 사람의 동참을 집요하게 강권하는가?

그 답은, 교인의 개개인 신앙의 정도에 달려있다.

 

유일신 종교는 보통 절대적 복종을 요구한다. 비록 세속에서 율법과 따로 노는 생활 철학과 가치관을 고수하더라도, 종교적 율법의 지엄함을 부인하는 인사는 없다. 그렇다보니, 상당한 투자 원금이 소요된다. 여기서 투자 원금이란, 바로 자신의 인생이다.

교회법이 엄격할 수록, 또는 엄격히 준수하는 걸로 보이고 싶은 사람일 수록 세속적 행복보다 신을 우선해 행동해야 하고, 이는 인생의 많은 시간과 기회를 포기하게 만든다. 이토록 많은 기회 비용을 치르면서 혹시나 원금 손실이 있을까 걱정해야 한다면 종교 생활을 뒤덮는 불안감은 이만저만한 두려움이 아니다. 만기가 되었는데 "아, 평생 헛짓 하셨네요."라는 통보를 받을 생각해 보면 오금이 저릴 것이다. 그러하니 그들은 수많은 투자자가 몰려야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다. "설마 우리 모두가 바보 짓 한 거겠어?"

그러니 그들은 기를 쓰고 추가 투자자를 끌어와야 한다. 무섭도록 집요한 그들의 전도 활동은 그런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다.

반면 자신의 종교적 신념, 특히 섬기는 신에 대한 불안이 없는 이들은 주위에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좋은 식당'을 권하듯 자신이 섬기는 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을 안내해 주고, 계율을 옳게 해석하여 몸소 실천하고 본을 보여 의도치 않은 전도를 이끌어 낸다. 지금 당장 그 신앙이라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늙어(죽어)서 뼈저리게 후회할 거라고 (심지어 지옥에 갈 거라며) 겁박할 필요가 없다. 본 상품보다 사은품을 돋보이게 하여 온갖 종교시설 활동으로 유혹할 필요도 없다. 신을 올바르게 믿는 이는 신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럼, 자신의 신상 변화에 대해 계속 떠드는 이는 대체 무슨 동기일까?

물론 그가 신변잡기를 늘 공유하는 스스럼 없는 사이라면 별다른 동기가 아닌 그저 잡담 소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아닌데 괜스레 늘어놓는 그라면, 아마도 자신의 변화 - 엄밀히는 자신의 선택 -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할까 싶다던가, 이직을 할까 생각한다던가, 누군가와 사귈까 고려 중이라는 이야기는 본인의 결정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발설이며, 어쩌면 제발 조언 좀 해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혹, 이미 무언가 결정해서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면 - 예컨대, 지금 우리 팀이 너무 엉망이라 이웃 팀으로 지원해서 인터뷰 예정이라고 말한다면 - 아마 그는 지금 우리 팀이 엉망이라 이동하려 하는 자신이 영리하며 새로운 팀에서 잘 적응해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는 지경인 것이다.

 

한국은 희망이 없기에 외국으로 이민 가서 어찌됐듯 정착해 보려는데, 그래도 여기서 미래 없이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 주는 것도 나름 깜찍한 자위법이긴 한데, 굳이 상대를 불러내 눈을 마주치며 동의나 부러움의 표정을 짓길 기대하는 모습은 솔직히, 가련하다. 남은 사람들의 입장은 뭐가 되나? 그 종교를 안 믿으면 지옥으로 갈 각오하라는 통보쯤 되는 것인가.

딴 팀 가겠다는 그 친구도, 어찌되든 알 바 아니긴 하지만, 한국의 좋은 속담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선 안 새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