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무지개를 읽는 법

금요일 Afterwork 때의 언짢은 기분 탓에 월요병이 슬금슬금 나를 좀먹기 시작하는 일요일 저녁.

느닷없이 창문을 부수듯 소낙비가 쏟아졌다. 우박인줄 알았을 정도로.

예측하기 어려운 여름 날씨이긴 하지만, 맑은 햇살에 여럿 속았겠다 싶은 소나기. 그럼 그렇지, 또 시작이군, 하고 반대쪽 창문은 어떤가 내다보러 나갔는데...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늘 무지개를 스치듯 보기만 해서였을까, 이토록 완전한 무지개를 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꼭 석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넘어가고,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불고, 내리는 빗줄기가 달라지면 무지개도 변한다. 보고 있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석양 풍경처럼.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다가, 아 그만 두 눈으로 바라보며 저 아름다움을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를 위해 돈을 모으고,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남기고, 평가받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는 마음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듯.

 

무지개 참 신비롭더라.

 

투덜대던 내 마음을 잠시 반대 방향으로 돌려보기만 했는데 영 다른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은 또 한가지. 무지개는 저만치 엄청나게 비를 퍼붓는 곳에 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퍼붓던 순간, 누군가는 내 위의 무지개를 보며 탄복했겠지. 나도 누군가가 비에 쫄딱 젖고 있을 저 곳에 떠 있는 무지개의 아름다움만 보이는 것처럼. 내리는 빗줄기가 반사하는 오색영롱한 빛깔에 매료되어, 그것이 어떤 이의 소풍과 산책을 망쳤는지는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 위의 비구름이 계속 흘러가고 나면, 소낙비를 슬기롭게 견뎌낸 나는 저만치의 무지개를 곧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낙비에 모든 절망을 끌어안고 망가진 내 모습만 바라보고 있으면, 잠시 뒤 찾아 올 무지개를 올려다 볼 기회를 놓치고 만다.

 

지금 나는 소낙비 속에 있는가. 어쩌면, 아마도. 축축하고 무겁게 젖어버렸는가. 어쩌면, 아마도. 이 비가 언제 끝날지 몰라 암담한가. 어쩌면,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 위엔 무지개가 흘러가고 있을까. 어쩌면, 아마도.

 

더 많이 젖어 몸을 추스리기 어려워지면 마음도 스러질 것이다. 그 땐 무지개고 나발이고 시이불견일 것이다.

그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명하고 슬기롭게 소나기를 견뎌내자. 빗줄기에서 조금이라도 피해 있자. 나의 온전함을 보살피기 위해몸과 마음의 양분을 다스리자. 그렇게 한 여름의 겨우나기가 끝나갈 즈음으면, 나도 마지막 소낙비가 시끄럽게 두들기는 반대쪽 하늘에서 드디어 나의 무지개를 만날지도 모른다.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듯

무지개가 뜨기 직전의 소나기가 가장 거칠다.

 

매일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