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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생

도전은 적당히 할께요, 제가 원할 때 원하는 것만.

Boys, be ambitious!
도전하라, 그것이 젊음이다!

 

늙음을 부정하고 젊은 채로 남고 싶어서 도전하는 걸 익어가는 인생이라 말할 수 있나 모르겠다.

 

사람이 죽을 때 저지른 일보다는 시도하지 않은 일 때문에 후회한다는 말이 있다.

'저지른 일'에는 '시도하지 않고 기회를 흘려보낸 일'도 포함되므로 사실 말장난이다.

어쨌건, 영감이 떠오른 일은 다 해봐야 한다는 논리처럼 들리지만, 인생의 매 순간 우린 나름 최선을 다해 결정한다.

안 하기로 한 일엔 그만한 당시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고 나니 아쉽고 후회가 될 수도 있지만, 거기서 배움을 얻는 것으로 족해야지 눈감는 순간까지 마음의 짐으로 담아두는 건 그 일은 하고 안 하고가 아닌 태도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 일을 하고, 저질렀고, 설사 결과가 흡족했을지라도 또다른 후횟거리를 안고 살 태도라는 말이다.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안 한 이들보다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건 망상에 가깝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인생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므로.

 

또 한가지 짚어봐야 할 점은, 우리의 무조건적인 '도전 찬양'이다.

인플레이션 우주 속에 인류가 신세계,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모험가를 열정과 성공의 선구자적 영웅으로 추앙한 역사는 길다.

하지만 모든 개미가 일신을 희생하고 주변을 내버리며 집단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럼 그들은 패배자인가? 비겁한 겁쟁이인가? 도전의식이 결핍된 불량 구성원인가?

우린 아직도 전체주의의 깃발이 나부끼는 걸 본다.

세상의 가치를 확장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이를 통해 이득이 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의 가치를 수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의 가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우리가 말하는 도전은 누구의 가치를 위한 것인가? 어떤 형태로 다루어야 충실한 건가?

우린 아무도 답을 모른다. 왜냐하면 정해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의 결말 같지만, 이는 사실이다.

 

그대는 그대의 삶을 살아라. 치열하게 고민해도 좋고 느긋하게 받아들여도 좋다.

아쉬운 마음에 후회를 해도 괜찮다. 오래 담아두어 상처 받지 말아라. 가끔 흉터를 매만지기는 해도, 그것이 그대를 망가뜨릴 순 없다.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라. 그러나 산들바람처럼 보내주어라. 따스한 햇살은 마음의 양분으로 남기고, 서늘한 빗방울은 곱씹는 퇴비로 뿌려두어라. 황사 같은 목소리들은 계절따라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삶의 마지막 즈음에 진정 안타까워 할 것은 아마도, 무엇을 했고 안 했고가 아니라 그 갈림길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막연히 끌려다니며 살았던 순간들에 대한 반추일 것이다.

 

Boys, be yours.

 

그대는 그대의 삶을 살아라. 온전히 그대가 주인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