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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스웨덴, 신뢰의 나라

스웨덴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나라가 틀림 없다.

이 문장만 보면 거창한 신뢰의 국가 이념이나 선진국 시민 민도를 떠올린텐데, 아쉽지만 그런 의미에서 하는 얘긴 아니다. (그렇다고 반대의 국가라는 말은 아니다)


유럽의 많은 공공교통들이 으레 그러하듯, 요금 지불은 자율적이다. 독일은 급습 점검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근거리 교통망은 승객들의 자율적 결제에 의존하고 있다. 점검하는 인력의 인건비가 비싼 점이나, 자동화 시스템 구축 자체의 인프라 비용이 크다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허술하다고 해서 이를 무임승차 기회로 보는 사람은 적다.

일단 외국에서 모든 인적성이 구축되어 온 이방인들을 제외하고 보자면, 이 곳에선 마찰을 회피하는 심리가 강하고 사회적 물의를 빚는 건 더더욱 피할 상황이다. 그건 '믿음직해서' 생겨난 믿음이라기보단 '믿는 게 속 편해서' 생겨난 신뢰의 색을 띤다. 허름한 동네를 향하는 허름해 보이는 주민들도 어쩌다 만나는 검표원들에게 모두 표를 보여주는 걸 보면, 탈법적 요행을 딱히 바라진 않는 모양이다. 삶이 팍팍하느냐의 문제와는 결이 다른 태도다.

이게 사람들의 민도가 높아서라고만 볼 수는 없다. 트램 무임승차를 하면 1500SEK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씌여 있는데, 40배 이상의 요금을 내느니 속편히 돈 내는 걸지도, 망신 당하기 싫어서 그런 걸지도, 뭐가 됐든 사회적 합의이니 체감 가격이 어떻듯 내는 수동적 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예측 가능한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게 익숙하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대단한 실익을 얻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얻는다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보행자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차를 멈춰세우는 사람들이 많은 건, 보행자를 우선하는 문화가 아니라 법제가 강력히 규정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문제 상황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최근 회사가 여러 내규에 있어 다소 강경하게 나오는 점도, 다문화 배경의 직원들이 늘어나다 보니 '자율적 눈치'를 보지 않는 외래인들을 다뤄야 하는 현안이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합의는 규칙 목록이 아닌 암묵적 태도의 전승에서 배우는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배울 의지가 없는 외래인들에게 결국 채찍을 대는 상황이라고 할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규범이 곧 회사의 내규가 되었지만, 이는 구성원의 다원성이 커지면 점진적으로 수술대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어디 회사의 규정만 그러할까. 머잖아 사회 시스템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갱단의 범죄로 드러난 외래인들의 정착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사회 곳곳에서 섞이고 마찰을 겪는 과정에 무수한 암묵적 합의가 도전을 받을 것이며, 새로운 중도적 사회적 협의와 합의를 얻지 못하는 부문에선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다. 그것 또한 성장통이겠지.


가까운 미래의 스웨덴에선 '이 나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나라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수한 가능성의 길 위에, 어떤 선택과 시도를 하느냐와 새로운 무리들을 포함한 구성원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웨덴은 결코 이전의 그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갈아입는 옷이 무엇이 될지는 커나가는 몸집에 맞춰야 하기도, 그 때 그 때의 바람직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에 달리기도 했다. 주객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새로운 규범은 강제된 신뢰를 엄격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뒤섞인 모습을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새로운 규범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혼란'에 가까운 형태가 될 것이다. 사바나의 야생도 나름의 규칙이 있듯, 그것도 규칙이라 한다면 말이다.

 

출처: https://hellohoney.tistory.com/3199 [차갑고 따스하고 뜨겁고 고요한: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