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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rpt

필사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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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독서로 인해 긴 시간 읽어야 했지만 작은 챕터가 끝날 때마다 마무리는 늘 영감을 주었다.
그 중에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에필로그였다. 에필로그가 이리 감동적인 건 마무리가 아쉬운 내 마음 탓인지 저자의 필력 덕인지 아니면 그 속에 녹아든 진심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읽어나가며 몇 구절은 꼭 따로 적어두고 싶었는데, 손글씨는 향후를 기약하고 일단 자판으로 남겨본다.


『불안이 주는 지혜』에서 와츠는 늘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만 늘 잊어버리게 되는 진리를 설파한다.
삶은 본래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우리의 안락과 안전을 완벽하게 보장받으려 할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인 끝없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는 고통은 우리가 이 근본적인 진실에 저항하는 데서 온다고 말한다.


와츠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삶에 관한 한 우리에게 값싸고 교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이 작은 생각의 요령만 터득하면 우리의 모든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한다. 변화는 계속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우리의 현실이 바로 이런 것 같다. 실제 삶의 더러운 밑바닥을 지우고 끝없이 긍정으로 나아가라고 응원을 거듭한다. 나는 이런 메시지에서 언제나 무자비함을 읽는다. 이런 메시지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살다 보면, 아주 확실하게, 나는 다 잘 해나갈 만큼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만약 내가 잘 버텨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이런 사람들은 내 얼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는 '잘해봐! 잘해봐! 잘해봐!' 하고 외치며 모든 게 다 좋기만 한 것처럼 허공에 향수를 뿌려댈 것이다. 이런 메시지에 숨은 의미는 분명하다. 불행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우리는 군중을 위해 행복해 보여야 한다.
이는 염려해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듯 소셜 미디어가 가짜 삶과 가짜 우정만을 양산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경계해야 할 공간인 것만은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행이 삶을 이루는 단순한 요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음미할 수는 없더라도 존중해야 하는 순수하고 기본적인 감정. 나는 우리가 불행 속에 뒹굴어야 한다거나, 불행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발을 좀 빼야한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불행에는 유익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불행은 우리에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기능이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슬픔에 근본적으로 정직하지 못하면, 우리는 상황에 대응하라는 그 신호를 놓치게 된다. 우리는 행복해지라는 요청이 빗발치는 시대에 사는 듯하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언제나 형편없기 마련이다. 한껏 높이 비상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기조차 버거운 순간들도 있다. 둘 다 정상이다. 사실 둘 다 어느정도 필요하다.


자연의 세계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 어떤 때에는 지방을 축적하고, 무성한 잎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풍부한 꿀을 만들며 번성하고, 어떤 때에는 살기 위해서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상태로 축소된다. 자연은 여기에 분노하는 법이 없다. 언젠가 다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자연은 순환적으로, 되풀이해서, 영원히 겨울나기를 한다. 식물들과 동물들에게 겨울은 감당해야 할 임무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겨울나기를 더 잘 하려면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수정해야 한다. 우리는 삶이 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시간은 순환적이다.
우리는 건강할 때와 아플 때, 낙관론과 회의론, 자유와 구속의 국면들을 거쳐간다. 모든 것이 쉬워 보일 때가 있다가도, 모든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것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가 언젠가는 과거가 되고, 우리의 미래가 언젠가는 현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로빈새처럼 지저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한겨울, 아무도 울지 않을 그 절정의 겨울 속에서, 날이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그 희망 하나로 누구보다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진주황의 가슴을 닮아서.


불행의 대척점에 있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수 많은 글과 강연이 있지만, 한번쯤 보면 좋겠다 싶은 영상을 걸어둔다.
https://www.ted.com/talks/dan_gilbert_the_surprising_science_of_happiness?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