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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다양성은 결국 개인의 문화다

옆 팀에 SW 개발 컨설턴트인 레오나드라는 사람이 있다. 평소 표정이 썩 밝지 않고 대머리인데 스웨덴인 치고 체구도 작다 (나보다 작다). 하지만 그가 파견계약직이건 외모가 그러하건 내가 따져볼 것은 아니었고, 나보다 박힌 돌이니 이름도 기억하려 하며 인사도 하곤 했는데.

그저께 점심 먹느라 여럿 모인 자리에 그 사람도 끼어 앉았고 (사실 나는 내 팀원이랑 먹으러 간 건데 그 팀 몇몇이 합석함)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인도인 여직원과 이야기 하다 내가 한국에서 온 걸 꺼내게 되었다.
그 여직원은 엄청 반가워하며 신기해 하는데, 갑자기 내 옆에 앉은 레오나드가 뜬금 없는 소릴 했다.
"니네 코리안들은 말 할 때 컴플레인하는 것처럼 말하잖아."
이 무슨 개소릴까?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다양성을 장려한다는 이 회사에서 이런 소릴 할 수가 있는 건가?
순간 일동이 모두 잠깐 얼어붙었다가, 인도인 직원이 무슨 소리냐며 바로 포문을 열었다. 나는 일단 시비를 가리기 전에 상황정리를 하려고 웃으며 "그냥 우린 서로 다른 거야."라고 멈춰세웠는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괘씸하다.

2주 전 아파트 공용세탁실에서 겪었던 일이 오버랩 된다. 스웨덴인들은 보통 외부인에게 친절하거나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라던데, 이건 다른 의미의 '무시'를 하는 건가? 열등감이 깊은 이들은 타인의 흠을 잡으려고 늘 곤두서 있는 걸까. 그렇다고 그들을 측은지심으로 안타깝게 바라보기엔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그런 그가 그 전 날 단체 메일로 알린 이직 소식은 다소 신선하기도 하다. 그가 옮겨간다는 볼보카는 그에게 정규직과 높은 연봉을 약속했을런지 몰라도, 그는 거기서 정말 다채로운 억양의 중국인들을 무수히 만나 조아리며 치이며 살게 될 것을 알고 있으려나.
어쩌면 그 걱정과 낙담에 애먼 나에게 해코지를 한 건 아닐까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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