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어린이라는 세계

참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다.
아니, 그저 마음에 들었다는 표현만으론 그 감정을 충분히 그려낼 수 없다.
김소영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회사 도서관에서 육아 관련한 책을 제법 빌려보곤 했는데, 내 탓이 크겠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은 몇 번의 대출연장을 하면서도 자투리 시간만으로 절반쯤 밖에 읽지 못했고, 반납한 뒤에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내내 숙제처럼 뇌리 한 켠에 개켜두다가, 오늘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한 구석에 앉아 마지막 페이지까지 쉼없이 읽어내려갔다.

난 사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부분을 여러번 되읽느라 다소 긴 시간을 소비하는 편이다. 그런 스스로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어지간히 마저 읽을 생각이 아니라면 반납한 책을 다시 빌려오는 경우가 드물다. 이 책이 계속 생각 나던 건, 마치 나를 잘 아는 친구가 "꼭 읽어봐"라 권한 책을 떠올리는 듯 한 기분이었다.

글쓴이가 묘사하던 상황과 대화의 목소리는 거의 상상할 수 있었다. 그 마음도 거의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글솜씨와 경험이 있었다면 이와 똑같이 쓰고 싶을만큼 나의 관념을 반영해 준 책이 있었을까 생각도 든다. 한 때, 부모가 되어봐야 아이와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짧은 식견을 후회한다. 어른의 통찰은 그런 자격 조건으로 얻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귀여운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꾹 참고 한없는 사랑의 눈길로 아이들을 살펴본 글쓴이 덕분에, 어린이가 어떤 존재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그제야 보였다. 어린이들은 말 그대로 '세계'였다. 무지했던 나의 기득권적인 의식과 행동들이 부끄러워졌다.
글쓴이와 함께 하며 존중받았던 어린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런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이해해야 하는 큰 이유는,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라서가 아니라, 어린이들은 지금 어른들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이 삶을 돌아보고 그 깨달음을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도 부질없어지는 것이다.
육아서도 철학서도 아닌 에세이라는 분류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르침은 내가 나에게 주어야 하며, 내 안의 울림이 들리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깨달음을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책의 후반에 이르면서 코끝이 시큰거리며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를 치유하는 일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세상의 어린이들이 날 도와줄 것이란 희망이 자란다.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EC%96%B4%EB%A6%B0%EC%9D%B4%EB%9D%BC%EB%8A%94_%EC%84%B8%EA%B3%84.html?id=Dl0MEAAAQBAJ&source=kp_book_description&redir_esc=y

 

어린이라는 세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로 10년 넘게 일했다.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

books.google.co.kr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찬가  (0) 2022.08.02
아직도 된다  (0) 2022.07.31
시한부의 깨달음  (0) 2022.07.27
방황의 회상  (0) 2022.07.20
고기인가 생명인가  (0) 2022.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