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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밥 같이 먹을까?

"밥 같이 먹을까?"
"아니, 밥 먹고 만나자."



공동체 중심적인 사회에선 음식을 나누고 함께 먹는 행위에 관련한 유대적 관계가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같이 밥을 먹는다'는 말이 인연과 인맥과 단위 조직, 가정을 이루는 것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표현이 되었다.

그런데, 밥을 함께 먹는 행위가 건강한 식습관에는 좋지 않다는 점이 밝혀졌다.

1. 식사의 속도
둘 이상의 구성원이 함께 밥을 먹을 때, 식사의 속도를 상대에 맞추는 건 식사 예절 중 하나로 꼽혀 왔다. 뿐만 아니라, 실제 식사 중 인간은 상대, 또는 집단의 속도를 따르는 동기화가 작용한다. 이는 식사와 활동이 번갈아 일어나는 오랜 집단 생활의 습관으로, 조직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지금 시대에도 많은 학교에서 반복되고 직장에서 단련하는 루틴이다. (점심식사 시간이란 것이 왜 정해졌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상 '더 천천히' 먹는 사람이 '더 빨리' 먹는 사람의 속도를 맞추게 되어 있다. 효율은 단위 시간으로 평가되므로 동일 품질에 대해 더 '빠른' 것이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왜 이렇게 빨리 먹느냐"는 핀잔이지만, "왜 이렇게 천천히 먹느냐"는 경쟁력과 근면함에 대한 질책이 되기 쉽다. 무엇이든 '빨리' 하고 쉬는 게 더 바람직한 시간관리라고 보는 현대적 효율론도 이런 시각에 기여한다.
결국 여럿이 모여 밥을 먹게 되면 개인의 식사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가장 빠른 사람에 맞춰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속도를 맞춰려다 보면 선호하는 반찬과 부위만 먹고 나머지를 잔반으로 버리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친환경 식사에 정면으로 반하는 셈이다. 지난 달 유엔 총회에서 인간의 음식 쓰레기가 가속시키는 환경 재앙을 주제로 연설한 그린피스 대변인 에릭손 송의 논문은 이러한 현상을 빅데이터로 증명하고 있다.

2. 식사 중 대화
입에 음식을 문 채 말을 하는 건 여러 문화권에서 꾸지람 받을 일이고, 교양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식사 중 대화가 일절 없는 상황은 매우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라는 공감대가 있다. 사교의 연장선에서 "밥 같이 먹자"는 언어가 통용되는 걸 고려하면, 식사 전후에만 대화하고 먹는 도중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가? 입 안에 음식이 없을 때 대화를 하면 된다. 여기엔 현실적으로 우스꽝스런 가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내가 말을 꺼내고, 상대가 음식을 다 삼키고 나면 대답을 하고, 거기에 대꾸할 다른 사람은 얼른 자신의 음식을 다 삼켜야 하고, 행여나 박자가 안 맞으면 대꾸를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 화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버린다. 상대가 언제 대답을 할 지 모르므로, 내 입에 언제 한 입 음식을 넣어도 될 지 눈치를 봐야 한다. 과연 이런 식으로 대화가 가능할까?
옥스포드 대학 에리카 송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 속도로 식사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입 안 음식을 완전히 씹어 삼킨 뒤 새로운 음식을 입에 넣으려면, 평소 식사 시간의 2.5배가 소요된다고 한다. 시간적 제약이 있는 식사를 하는 경우엔 원래 식사량을 다 끝마치지 못 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연구결과에선 느린 식사가 포만감을 촉진하여 본래 식사량보다 적은 섭취를 유도하는 긍정적 측면도 평가하였지만, 수치 상으론 보통의 학생이나 직장인이 수용할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결국 범지구적 예의범절을 지키며 대화와 식사를 함께 하려면, 훨씬 적게 먹으면서 주고받는 대화의 타이밍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한다. 이 피로한 과정을 감내하며 식사 중 사교적 대화를 이어가기가 쉬울 리가 없다. 식사보다 대화가 중요한 만찬장에서 손도 대지 않은 요리들이 버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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