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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불멍에 관하여

아궁이는 참 매력적이다. 일산화탄소로 어지럽곤 해도 좀처럼 자리를 뜨기가 어렵다.
불을 당긴 처음에는 조금 새초롬하게 쉬이 타오르지 않지만, 매캐한 연기를 인내하며 진득하니 부채질을 하노라면 결국엔 마음을 여는 듯 하다.

불을 때며 땀흘리노라면 잡생각을 정리하기도 좋다. 단순 노동의 미학이랄까. 운동하러 나서는 것보다, 뭔가 노동 소득도 있으니 더 보람 있기도 하다.

인류가 역사 상 이룬, 또는 도박한 최고의 선택은 뭘까. 아마 불을 선택한 게 아닐까. 인간 역시 불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았을까. 심지어 지금 2021년에도 인류는 크고 작은 불로 인해 목숨과 인생을 잃는다. 오죽하면 불을 숭상하는 종교조차 한 때 있었을까.
그런 불을 보며 불 자체가 아닌 주위를 둘러본 인간은 그 순간 운명의 지혜가 발동했을 것이다. 용기가 아주 많이 필요한.
'이것 봐라... 다들 겁내고 있네. 그럼 저걸 통제할 수만 있다면 내가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건가...'
그리고 인간은 불을 정복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인류가 모험과 도전, 그리고 가능성의 시도를 이어온 건 그 생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불과의 동행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은 이제 사람들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도구가 된다. 남김없이 돌려보내는 수단이 화르르륵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뜨거운 춤을 신들린 듯 추어댈 때, 인간의 눈은 삶의 끝을 미리 엿본다. 그 영화로운 문명의 시작과 영욕의 끝. 인간과 도시와 국가와 문명의 시작과 종말은 불과 함께 한다. 아니 그 과정을 모두 불과 함께 한다.

그러한 불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생각하기에 또 하나의 꽃이라 이름 붙이지 않았겠는가.
그러한 불꽃을 바라보며 어찌 넋을 잃고 멍히 생각의 흐름을 풀어주지 않겠는가.

우린 불멍을 할 수 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니라.


내가 두번째 직업을 택할 수 있었다면 아마 가마 할아범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성격도 비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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