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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인간이 영생을 꿈꾸는 건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다

"무엇이 필요하느냐?"
 
모든 설계의 창조자, 타이렐을 찾아 간 로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청한다.
"더 오래 살고 싶어요, 아버지."
"그건 설계 할 때부터 정해진 거란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어."
"전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놀라운 일도 많이 해냈단다."
 
아들의 어깨를 감싸안아주며, 창조자는 따스하게 일러주었다.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거라."
 
그러나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아들은 분노에 휩싸였고,
그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나쁜 짓을, 무의미하게 저지르고 만다.
- 블레이드 러너, 1982 -
 
그러나 그 분노는 더 오래 살 수 없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육신의 필멸성 자체가 아니라
삶이 선사한 놀라운 기억을 모두 지우고 떠나야 한다는 숙명에 대한 속상함에 가까웠다.
이렇게 바람결에 흩날려 사라져버릴 삶의 기억들이라면 왜 그리 찬란하고 격동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거였느냐는 항변이랄까.
 
복제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닮아 있다.
"나는 상상도 못 할 놀라운 일을 경험했어.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은 모두 사라지겠지. 빗 속의 내 눈물처럼."
신은 인간에게 이토록 찬란한 삶을 선물해 주고는, 왜 종국엔 모두 흩뿌리며 떠나게끔 하는 걸까.

"이제, 죽을 시간이야."

삶의 미련에 대해 나즈막히 설명하던 그는 씁쓸하기도, 무기력하기도 한 미소를 지었다. 그 짧고도 경이롭던 희노애락의 삶을 돌아보는 주마등 속이었을까.
"Time, to die."
그는 이 말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을 알 리 없는 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