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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는 시간

좀 늦게까지 일하다 귀가하며 장을 보고 집에 오니 저녁 만들 기운이 없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워진다.
근 일년 사이 이런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어제 늦게 자서 그런가?

어쩌면 오늘 오후의 섹션 공유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임시 디렉터가 임명되고 나서 갖는 첫 공유회였다. 근래 떠들썩한 조직개편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낸들 알 바 아니다. 긴 세월 경험한 회사 조직이란 계절따라 바꿔입는 옷 같은 것이므로.
잘 알아들을 수 없던 공유회가 그럭저럭 끝나가고,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내 매니저가 손을 들더니, 여름휴가 권장기간 지정에 대해 질문했다. 최근 공지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4주 가량의 집중 휴가 기간에 본인 휴가를 쓰도록 되어 있다. 예외 사유를 협의해야 하니, 권장보다는 강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디렉터의 답변은 다소 기계적이었다. 아마도 최고 경영진 쪽에서 정한 공식 사유겠지만, 나름 말이 되긴 한다. 수시로 병가도 내고, VAB(자녀 간병으로 인한 휴무)도 느닷없이 쓰는 와중에 휴가도 서로 다르게 다녀오면 회사 프로젝트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장기 휴가를 별다른 이유 없이 갈 수 있었기에 업무 공백을 사전 조율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이 없고, 결국 기간을 한정하는 식으로 억제하고자 결정한 모양이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여기 임직원들이 그런 업무 공백을 최소화 하고자 조율할 의지도 노력도 없을 것이란 경험칙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싶다.
내 입장에선 한여름에 한국에 가야 한다는 제약이 썩 달갑지 않다. 자유로운 개인 의사를 존중한다고 알고 있었던 회산데, 뭔가 전근대적으로 회귀하는 느낌이 든다. 지난 직장은 한국 회사였음에도 점점 더 자율화가 되다가 수년전부턴 일년 중 알아서 휴가 다녀오는 걸로 내규가 바뀌었다. 심지어 장기휴가가 권장사항이었다. 근데 뒤이어 해외 원격 근무에 대한 제약 건에 대한 발언을 듣고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디렉터는 뭔가 솔직하지 못한 표정으로 웅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원격 근무를 하게 되면 세금이나 사회보장보험 등 문제가 되어 어렵다는, 두루뭉술한 예의 사유를 또 꺼내고 있었지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다. 그것이 불법성 문제라면, 예전에도 허용이 되지 않았어야 한다. 그리고 보험의 적용 여부는 원격 근무를 선택한 개인의 이슈이지, 그게 적용 안 될까봐 회사가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 또한 그건 한 국가나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 모든 회사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외국 원격 근무를 허용해오고 지금도 허용하는 다른 기업들의 반례와 상충한다. 또한, 해외 출장과 법리적으로 구별이 안 되므로 제도적 제약이라는 건 궁색한 이유가 틀림없다.

근데 마지막에 덧붙인 디렉터의 말 한 마디가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동안 당신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too much freedom)를 줬거든..."

난 그녀가 실언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공유회 같은 곳에서 저 이야긴 해선 안 되었다.

저 발언은 두 가지 함의를 갖는데,
우선, 직원들을 더이상 믿지 않는다.
둘째로, 잘 될 줄 알고 시행한 규정이 악용된 사례가 많았던 걸로 보인다. 회사도 더이상 두고보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사달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직원들이 다 파렴치해지고 게을러지고 뻔뻔해지고 월급루팡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보는 근본 원인은 바로 diversity, 다양성이다. 이 나라가 이민자 마구 받고 난민 마구 받으며 순진한 미래를 꿈꿨다가 사회 갈등을 구조적으로 세차게 들이 맞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Out-of-box-view를 반긴다며 사방에서 직원을 뽑아댔는데, 문화적 근본이 다른 그들은 가르쳐서 빚어낼 수 있는 초등생들이 아니다. 사실 그들이 본국에서 동일 문화권 동일 민족 속에 살 땐 나름의 규율과 상식이 존재해 체계라는 걸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관점에선 동양인들은 원체 남 눈치를 많이 보니 알게 뭐냐 마이웨이 식으로 굴지 않는다. 하지만 여타 민족들이 모여 회사의 identity가 제대로 각인된 것도 아니고, 이민/이직 사유도 제각각이고, 인생관도 서로 전혀 비슷할 이유가 없는 수천 수만명이 모여 있으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회사는 이제서야 그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수준 있게, 교양 있게, 상식 있게, 품위 있게, 배려 있게, 자기 규율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입사한 게 아님을.

이 나라의 사회는 상당 부분이 신뢰에 기반해 조직되고 운영된다. 트램 티켓이건, 회사 보안 규정이건 개인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시대가 끝나감을, 끝내야 함을 이 사회와 회사들은 점점 더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Diversity를 중용하고 존중하며 특색이라고까지 내세웠지만,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낮은 포용장벽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시스템 운영자들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본인들이 주창하고 추구해 온 기본 가치, 즉 신뢰를 저버려야 하는 수치스런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다양성을 자랑처럼 이야기 하면서도, 실상은 다양한 아웃소싱을 원한 것이지 모든 다양성에 열려있고 대비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었기에 이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순간이 도래했다. 그들이 다양성을 좋아한다고, 지향한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을까? 누군가를 속이려고 한 거짓말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본심과 거리가 있던 수사에 불과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멋부리는 호시절은 이제 끝나버린 것 같다.

군자의 멋스런 대범함도 풍요로운 가을에나 가능한 것이다. 문화의 보릿고개가 땅거미처럼 이 곳을 집어삼킨다.
 
 
덧.
퇴근해 집에 와서 맥빠진 채로 생각을 거듭하면서는 회사에 대한 원망, 이 나라에 대한 실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낙담을 어찌 써내려갈까 생각하며 분노의 설거지를 하면서.
근데 막상 컴퓨터를 켜고 글감을 다듬어 생각하며 써내려 가다 보니까, 여러 환경이 어우러져 이해가 가기 시작하고 그 반대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납득도 되기 시작하더라. 말미에 가선, 아까 왜 그리 비분강개했나 나의 심경이 다소 지나치게 격앙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생각을 이리 저리 굴려가며 거듭하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 글을 쓰는 건 말로 내뱉는 것보다 되새겨야 하는 생각이 많고 시간이 걸리며 따라서 나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한다는 건가 보다. 멋진 글타래를 써내려 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언행을 수련할 수 있어서. 생각이 가다듬어지면, 삶이 불필요하게 널뛰거나 지저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