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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우주가 나를 살짝 굽어 살피었다

어제 아침, 가족과의 긴 (휴가 같은) 나날을 보내고 홀로 맞이하는 첫 월요일 출근길이 썩 즐거울 리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것까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거의 일주일만에 사무실로 가는 트램에 올랐다.

내리기 두 정거장 전, 플래폼을 향해 서 있던 내 곁의 출입문으로 유모차 한 대가 내린다. 할아버지가 밀고 있는 작은 유모차.

뒤보기로 앉아 있던 아기는 한 서너살 쯤 되었을까. 동유럽계의 느낌을 띠는 작고 귀여운 아기와 창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보통 트램에서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지만, 아기여서 그랬는지 얼굴을 바라보았고 아기도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그 때 내 표정을 알지 못한다. 내 마음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1초쯤 지났을까, 순간 아기가 갑자기 활짝 웃었다. 소리나지 않는, 어쩌면 조그맣게 까르륵 소리가 났을지도 모르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본능이었을 것이다. 곧바로 나 역시 마주 웃었던 건.

아기의 환한 웃음에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그 할아버지였다. 고개를 돌려 마주 웃는 나를 발견하고선 유모차를 다시 밀기 시작했다. 트램이 출발하며 앞서 가던 유모차 곁을 천천히 지날 때, 아기는 작은 손을 들어 내게 흔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마주 흔들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누가 나를 보는지 따윈 안중에 없이, 실실 웃으며 나도 손인사를 했다.

안녕, 그리고 안녕.

회사에 도착하고,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고,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 순간 아기의 웃음이 떠오른다. 어제 그 트램에선 내릴 때까지 웃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연한 십여초의 순간, 그건 무슨 인연일까.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신이 있다면, 자연의 섭리가 있다면, 우주가 날 내려다 본다면, 날 보살피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기를 통해 날 살펴보고, 내게 괜찮다며 다독이는 순백색의 웃음을 지어주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한없이 기운이 빠지고 낙담하고 절망감 속에 또 길을 나서야 했던 나를 토닥이던 그것은 아마도

나를 향한 삶의 사랑이 형상화 되어 격려하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괜찮아,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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