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5시 조금 넘겨 퇴근했는데도 컴컴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집에 들어서면,
그냥 이미 모든 게 늦어버린 것 같아 저녁 밥을 차릴 의욕도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많다.
내 목구멍을 위한 일인데도 이럴진대, 식솔 먹여살리던 아내는 오죽 힘에 부칠까 일년 간 되새기고 되새겼다.
그럼에도 이번 겨울에 만나선 첫날 아침 이후 그다지 차려주지 못해 미안함과 민망함이 남는다.
외출복 벗고 식탁 앞에 멍청하니 앉아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으면,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도 전화해 와 내 끼니를 챙기는 사람.
귀찮아서 굶을까봐, 그러다 삐쩍 말라 죽을까봐, 수마와 사투를 벌이면서 간단한 요리를 알려준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 수호천사 덕에 오늘도 난 늦지 않게 허기를 달랜다. 아니, 신기하게도 만들어진 요리 덕에 기분이 살아난다.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온실 문 밖으로 홀로 나와 세상의 빗줄기를 맞고 있는데,
온실 안에선 날 응원하는 이들이 내 뒷모습을 지켜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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