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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생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신의 주파수

"열 두시까지 일했다고?"

그는 놀란 눈빛으로 되물었다. 갓 서른이 된 그는 문화적 인종적 차이로 인한 것인지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격세지감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터키에서 나고 자란 그가 동일한 놀라움의 반문을 한다는 건, 이것이 어쩌면 국가를 넘어선 청년 세대가 갖는 공통된 기저 때문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 직장 생활의 초반부, 아니 십여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난 때때로 늦은 야근을 하곤 했다. 개발부서의 생리 상 눈치를 보며 야근하는 직군이 아니었고, 늘 항상 쌓여 있는 백로그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타협할 대상은 대체로 나 자신이었다.
"요거 조금만 더 살펴볼까? 금방 알아내서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내 좌뇌의 속삭임에 우뇌는 걸머지던 가방을 내려놓곤 했고,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한 두 시간 뒤 에고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막차 시간이 15분 남았다고~!"

희한하게도 열시 넘어 나서는 날이 이어질 때에도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 많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날의 성취가 느껴졌고 동료들과 협심해 무언가 일궈낸 날들이 그랬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는 기분을 담아나오는 날이면, 구내식당에서 저녁으로 뭘 먹었든 속이 든든했고 날이 얼마나 쌀쌀했든 몸이 훈훈했다.

혹자는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나 세뇌에 따른 새마을운동의 희생양 효과라고 볼런지 모른다. 나로선 그 당시 내 정신이 오롯이 이해타산에 날렵하고 입신양명에 최적화되어 살았는진 뾰족히 되돌아 보기 어렵다. 희끄무레 남은 감성의 잔상에선, 숨이 턱에 닿도록 질주했던 날의 푸른 하늘과 땀내 나던 내 청춘이 그럭저럭 보람 있었고 즐거웠다는 것 뿐이다. 전장의 참호에서 전우와 나누던 주먹밥 처럼, 여기서 그 시절 자체가 객관적으로 우호적이었가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삶은 매 순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과해 왔는지에 모든 색깔을 내건다. 그래서 어디서 어떤 고매한 수준으로 시간을 살았는지 우린 서로 비교할 수도, 필요도 없다.

아마 그 터키인 동료는 끝내 내 젊은 날의 기행적(?) 나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만의 가치관이 있고, 회사가 사주지 않는 회식엔 절대 참석하지 않는다는 지조로는 내 (별도 야근 수당도 없는) 전념을 납득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삶을 살 것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산다. 하지만 그가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이해타산으로 살아가는 이에겐 이해타산 이상의 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헌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쏟는 것에 그 가치가 있고, 오묘하게도 그 점 때문에 결국 대가가 찾아온다.
신의 공평함은 생각보다 아주 아주 긴 파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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