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오랜 역사 속 인접한 국가나 민족 간에는 침략과 수탈의 시간이 얽혀 있어서 일방적이든 쌍방간이든 뿌리 깊은 미움과 혐오가 자리하기 쉽다. 이는 해당 시절을 직접 겪지 않은 후손에게도 구전되다시피 하는 증오의 유전과 같아서, 때론 마치 민족적 자아를 상징하는 감정과 정신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우리에겐 중국과 일본이 그러한 대상이다.
국가의 전체주의적 속성 상 국민 개인의 심성이나 사상과 영 다르게 작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지만, 엄연히 일어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은 해석 여부를 떠나 지워지지 않는 화석 같은 흉터로 각인된다.
나라 꼴이 뒤숭숭할 땐, 종래의 나치즘이 그러했듯, 민족주의를 표방한 배타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이들에겐 민심을 조종하기 위한 알맞은 수단이기도 하다.
이 움직임은 대부분 필시 의도적 각색이라 보인다. 왜냐하면, 외부 존재에 대해 단일 객체로 상정한 뒤 '동맹'이나 '원수'의 프레임을 씌우는 건 국민 개인이 얼결에 선동해 만들어 낼 만한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린 얼마나 많은 유사 사례를 선택적으로 골라 프레이밍하는지 잊고 있다.
우리와 긴 세월 정벌과 굴욕과 수탈로 형편없이 얼룩지며 부대껴온 중국은 실상 80년이 되지 않은 나라다. 우리가 만약 과거의 침략과 수탈에 대해 이를 갈아야 한다면 그건 청나라, 명나라, 원나라, 금나라, 요나라, 송나라, 수나라, 한나라 따위여야 조금 더 이치에 맞다. 개개의 나라를 분리해 증오하기도 번거롭고, 심지어 진짜 악랄했던 왕이나 장수를 따로 역사서에서 찾아 기억하며 불러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우린 지금 '중국'을 한 덩어리로 취급하며 감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실 최근래의 충돌이었던 6.25 사변은 양 연합군 간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를 놓고 철천지 원수 국가로 상정하는 건 다소 억지에 가깝다. 사변의 발생이나 동족상잔의 주동자, 분단의 결정적 기여자는 북한과 소비에트연방국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므로. (근데 소련군 대신 중공군이 내려온 이유는 나도 공부해 봐야겠다)
우리에게 더 근래에 괴로움을 주었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심지어 삼국시대 즈음엔 왜나라와 동맹인 백제도 있었고, 직접 맞닥뜨릴 일이 그다지 없던 고구려도 있었으니, 일본국의 전신 왜나라(라고 말하기엔 호족 중심의 도시국가에 가까웠던 그들)하고 철천지 원수의 역사를 나눈 이는 '한민족'이 아니라 신라였던 걸까 싶어진다.
가장 최근에 얻어맞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유독 섬나라의 악랄함이 더 각인된 것이지, 왕조가 바뀔 때마다 몇 번씩 쳐들어 와 한반도를 들쑤셔놓고 엄청난 백성을 노예로 잡아갔던 대륙 방향 나라들의 만행은 더 빈번했고 모욕적이었다. 반면, 남해안에서 긴 세월 노략질로 수탈을 당했던 국가나 백성들의 역사에선, 섬나라에서 건너오는 해적들이야말로 천하의 원수였을 것이다. 우린 어쩌다 선택적 프레임을 놓고 주관적 기억으로 국가적 통합 적개심을 갖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전시가 아닐 때에도 우린 그렇게 전체주의적으로 사고하고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가.
(덧붙이자면, 이 글은 친중을 하자거나 친일을 하자거나 그들의 과거를 잊고 이해하고 없던 일처럼 넘기자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우리의 사상과 사고가 과연 순수히 개인의 고찰과 판단과 지혜에서 비롯된 것인지 때론 되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고백이다. 그럼에도 글의 기조가 맘에 안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하나하나 붙잡고 감화시키거나 설득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 알 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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