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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생

나는 존 스미스와 다를까

어제 새벽 한 시 반까지 깨어 있게 만들었던 '높은 성의 사나이'. 아마존 프라임에서 본 건 아니고 요약본 유튜브 영상이었지만 자그마치 5시간이 넘는 탓에 저녁 만들고 먹고 설거지 하고 양치질까지 하며 보고 말았다.

재미도 있긴 했는데... 결말까지 다 보고 나서 남는 한 가지 느낌은 딱 하나, 존 스미스라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전우를 저버린 양심의 괴로움, 가족을 향한 책임감, 그리고 제국에 대한 두려움. 그의 충성과 잔인무도함은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선택 뒤엔 가족의 안전과 평안에 대한 바람이 가장 큰 이유로 존재했던 듯 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강철 같은 태도는 영화 후반 아들을 다시 만나며 급속히 무너진다. 이미 잃어본 아들이었기에, 아마도 후회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리라. 부인인 헬렌이 기차에서 존을 만류하며 외친 말엔 그 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회한이 담겨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스스로 죽었고, 큰 딸은 사회에 복종해야 한다는 부모를 거부하며 떠나려 하고, 막내딸을 나치의 세계에 빠져들어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되어 버렸다. 헬렌은 절규했다. "우린 다른 세상의 토머스를 데려올 자격이 없어요."라며.


나는 어찌 살고 있는 걸까.
우선 순위를 꼽으라면 가족을 무엇보다 앞서 고르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을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건 할 수 있는 부모가 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나의 최우선순위로 놓여 있는 걸까.
사회생활이 그런 거라고, 회사를 다녀야 돈을 벌고 우리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거라는 알량한 변명을 대며, 나치에 복종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지 않던 존 스미스는 지금 내 안에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미친듯이 그걸 그리워 하고 후회하고 돌이키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지구의 반대편에 누워 나는 쓸데없는 고뇌를 만들고 이를 합리화 하려 매일 같이 애쓴다.
옳지 않은 세상의 규칙을 탓하며, 그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면서도 다른 방향에서 길을 찾으면, 엉뚱한 곳에 이르른 건 그 길 탓이 아니다.

후회하지 않겠나?





덧.
영화는 좀 색다른 시각이 두드러진다. 평행우주에 관한 내용을 물리학 빼고 설명하는데, 희한하게도 '다른 우주'에서 우리 우주를 엿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를 후하게 평하는 시선이 녹아있다. 그들의 잔인한 수탈을 겪지 않은 미국인 관점인 듯.
https://youtu.be/fH4YuHIxj9s?si=sMF4M6ZavQ-kBf3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