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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스포츠 대리만족의 비밀

아시안 게임이 끝나간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의 낙이 없던 많은 이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승전보에 환호를 지르며 내 일처럼 기뻐한다.

'내 일'처럼 기뻐한다.
도대체 왜.


비단 중국이나 일본처럼 오랜 역사적 숙적과의 대결만이 아니다. 국가 대항이라는 기치는 민족과 나라를 하나로 묶는다.
위정자들도 그 점을 고래로 잘 알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민정책을 수시로 펼쳐왔다. 비록 지금은 우민화를 표면적으로 드러내진 않더라도, 한류와 같은 대외 인지도와 국가대표급 각종 스포츠에서 고국의 이름이 빛나는 순간 여전히 사람들은 일상을 떠나 몰입하곤 한다.

도대체 왜.


이 역학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우린 무엇이 우릴 홀리는 건지,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는 것인지 가늠할 길이 없게 된다. 부화뇌동이란 우리의 선입견처럼 딱 보기에 멍청한 짓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면 '나의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해 얻은 결실임을 밝히는 기삿글에는 '나의 부당한 처사'인 양 분기탱천한 원성이 치솟는다. 어쩌면 이런 감정의 회오리는 대리만족이 아니라 현실불만을 투시한 감정이입에 가까워 보인다.

또 하나 떠올릴 것은, 그 대리 승리 속에 느끼는 자긍심이다. 내가 잘 한 게 아니고 내가 포상받는 게 아닌데 왜 내가 자긍심을 느낄까? 그건 스포츠든 무엇이든 우리가 소위 대표를 내세워 성취한 결과가 우리의 공통된 형질, 즉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어떤 스포츠에서 상당한 성취를 올렸을 때 우린 타 이웃국가보다 은근한 응원과 동질적 자긍심을 느낀다.

근데 이게 감정이입을 통해 자긍심을 느낄만한 상황인지는 의문이다. 각 개체의 승패를 더 중시하는 최근의 시대 흐름을 놓고 본다면, 지역이나 학벌의 유대감은 이전보다 상당히 연약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누군가 타인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해석되는 시절이 아니다. 가족의 경계도 이전보다 작아지고 각개화 되었으며, 비혈연 관계 역시 나의 손해를 무릅쓰는 도원결의 같은 건 줄어들었다. 근데 생면부지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무슨 유대감과 민족적 단일감을 느낄까? 혹 '저 자를 보라, 나 역시 타고난 형질은 우수하나 어쩌다 보니 지금 그저그러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라는 자기 위로를 하고 싶은 걸까.

스포츠에서만 유독 그런 사회적 현상이 두드러지는 건 연구해봄직 하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승승장구하여 놀라운 실적과 이익을 낳았더라도 내게 떨어지는 보상이 시원찮으면 '자긍심' 따위는 열정페이와 함께 내다버리라는 자조가 만연한 시대다. 나의 가까운 지인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것이 투기일지언정 부러움을 넘어 시기가 드는 무한경쟁의 시대다. 누군가의 금메달에 환호를 내지르는 마음의 심연엔, 어쩌면 국가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 같은 구태의연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뭔가 속시원해서' 같은 실없는 이유가 자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 같이 모여 '우리나라'를 응원해야 할 이유가 점차 사라지는 시대다.
한류 역시 그러하다. 나는 BTS가 아니고, 외국에서 내게 BTS 팬이라며 한국어로 말을 거는 외국인들이 다가올지언정, 그것이 내 삶이 미치는 영향은 별 게 없다. 신기한 일이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런 날도 오네, 정도의 감탄일 뿐이다. '남'들의 성공을 응원해 주는 곳은 허풍과 위선의 사교장 링크드인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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