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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Swedish Bank ID 발급, 그 지난한 여정

한국의 은행 계좌 개설도 외국인에겐 까다로울지 모르겠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스웨덴의 BankID는 뭔가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영역이었다. 사실 준비만 하면 큰 고비랄 건 없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몇개월을 보내며 굳이 꼭 필요하지 않던 BankID는 계속 미루던 숙제였다.

회사 동료들은 Swish 없어? BankID 아직 없어? 라며 뭔가 응당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보듯 날 바라봤다. 그들 때문에 만들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점차 온라인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BankID가 없으니 구석기인처럼 살아야 하는 건 슬슬 피로를 가져왔다. 당장 이사한 새 주소 등록을 위해 Skatteverket(세무서)에도 온라인 신청 대신 방문 신청을 해야 할 판이고, 해주는 것 없는 지역의료체계에 등록하기 위해서도 BankID가 필요했다. 새삼 한국에서도 신용카드나 핸드폰 없는 민원인을 이리 취급하려나 싶어졌다.

가장 결정적 계기는, 로컬 은행, 즉 스웨덴 은행 계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입사 초기에 개설한 인터넷 뱅크(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Revolut는 전통적 금융기관이 아니기도 하고 소속 국가가 영국으로 되어 있어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먼저 살던 집의 보증금 환급을 하려는 임대업체도 스웨덴 계좌를 요구했고, Relocation reimbursement(이주 교통편 보상)을 하려는 회사도 스웨덴 계좌를 요구했다. 적응한 게 가장 편하다고, 나는 이미 Revolut 앱이나 체크카드 등에서 딱히 불편이 없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지만, 이벤트성 필요로 결국 은행계좌를 개설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놈의 (잘난) BankID도...



BankID는 은행과 연계된 보안체계임엔 틀림 없으나, 엄밀하게는 사회안전망과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공인인증서와 거의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은행 계좌 개설 당시 필요한 서비스로 BankID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개인은 총 3개까지의 BankID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대체 뭐하러...?). 암튼 3개의 총량 이내에서, 몇 개의 은행에서건 발급할 수 있다는데, 은닉을 용인하는 보안체계 같기도 하고 뭐하자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다. Mobile BankID라는 표현도 쓰지만, 이건 모바일용이 별도로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BankID는 '반드시' 셀룰러 기반의 모바일 기기에 발급된다. 태블릿도 가능하지만 별도의 셀룰러 번호가 있어야 식별 가능 장치로서 인증이 되고 Mobile BankID를 발급할 수 있게 된다. 아, 결국 3개라는 총량도 3개의 각기 다른 모바일 기기여야 가능한 셈이다. 발급 인증 중에 전화번호로 일회용 코드를 발급받는데, 혹시 USIM만 다르면 동일 기기에서 여러개 발급이 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이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유의할 점은, 모바일 기기(정확히는 스마트폰)가 있어야 발급 가능하지만, 발급 시점엔 PC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이걸 위해 그 악명높은 ActiveX류의 플러그인을 설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발급 메뉴 자체가 PC 웹페이지에만 있고, QR 코드를 띄워 모바일용 BankID 앱에서 카메라 인식을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PC 없이 (적어도 최초 발급은) 불가능하다.


은행계좌 개설에 관해선 다른 글에 간략히 적어두었다.
Nordea Bank  계좌 개설


은행을 다녀오고나서부터 우편물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게 대중이 없다. 지난 주 목요일에 다녀와서 이번 주 금요일 퇴근길에 우편물을 확인했으니, 어찌보면 있을 법한 대기 기간이었지만 행여 분실된 건가 오만걱정이었다. 의외로 스웨덴은 시간이 문제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지도 모른다.

저것들이 전부가 아니었음은 이후 깨닫게 된다. 오른쪽 위에 놓인 Coop 어쩌고 씌여있던 걸 'Coop이내 주소 변경을 어찌 알았지?'하고 넘겨짚었던 게 우스운 실수였다. 허튼 우편물이 올 리 업다.

 

왼쪽은 Personal account(Personkonto), 오른쪽은 Saving account(Sparkonto)

 

이 비밀스러워 보이는 4자리 숫자가 나를 BankID 수렁에서 구원해 줄 Pin code라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예전에 Skatteverket에서 보내온 것과 같은 보안 비밀번호가 (내겐 희한한 방식으로) 들어있다. 나는 이게 BankID 또는 은행계좌 개설에 필요한 코드인 줄 알았는데, 정작 PC에서 입력해 보니 안 맞더라. 번역기로 위 편지를 읽어봤더니... Debit card용 핀 번호였다. (신용카드 핀번호 같이 결제할 때 가끔 쓰는 그것)

그리고서야 한쪽에 치워놨던 Coop 지점 이름이 씌여진 우편물을 번역기로 돌려봤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우편물은 '등기우편물을 어느어느 Coop 지점에 위치한 Postnord에 가서 찾으라'는 안내문이었던 것이었다. 등기우편을 알리는 우편물이라니... 그냥 문자로 보내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일전에 한국 집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거길 들른 적이 있어서 우편취급소 의미를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던 점이다.

위 안내문의 아랫부분을 잘라가 신분증(ID card)과 함께 제시하면 아래와 같은 등기우편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안 우편물)을 찾아 준다.


봉투부터 함부로 뜯지 못하게, 뜯으면 티나게 봉인을 해봤는데... 내용은 "이게 니 비번(핀 번호)이야"라며 덩그러니 적어놨다. 이쯤 되면 스웨덴 방식에도 어떤 일관성이 있는 듯...
이제 이 비번을 이용해 BankID를 생성하면 된다.


요약:
1. 은행 다녀온 뒤 우편물들 기다린다.
2. 무더기 우편물 받으면, 그 중 Postnord에서 받은 걸 뜯어 안내장과 신분증 들고 우편취급소에 가서 등기우편물을 받아온다.
3. 핸드폰에 BankID 앱 설치, 은행 앱 설치(여기선 Nordea bank 앱)
4. PC로 은행 홈페이지 접속(여기선 nordea.se)
5. 아래 절차대로 따라간다.




사실, 아까 체크카드 핀번호를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이미 BankID 발급 신청 중이었는데, 우편취급소를 다녀와서 마저 이어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여기선 미리 다 준비하고 시작하는 걸로 설명한다.

Nordea bank 홈페이지 → Kundservice (customer service)  → Skaffa eller förnya Mobilt BankID

Till ny mobile eller surfplatta 선택

뭐 설명은 긴데, 결국 원래 쓰던 사람의 기기변경이냐, 신규 발급이냐 묻는 것.

처음 발급하는 것이므로 오른쪽 발급 버튼 선택

은행직원이 멍청한 나를 위해 단순히 답한 걸까?

여기서 좀 당황스러웠던 게, 파일로 저장하는 옵션이 있다. 공인인증서처럼 PC나 USB 저장을 지원하는 걸로 보인다. 은행직원은 나를 미개한 나라 출신으로 긍휼이 여겨서 다른 경우를 다 빼고 모바일 기기에만 저장된다고 안내했던 것일까? 이 옵션은 지금 내게 별로 필요 없지만, 훗날 내가 스웨덴 번호를 안 갖게 될 경우엔 상당히 필요한 선택지가 될 것 같다. 알고는 지나가자.

인증 수단으로 Personal code를 선택

바로 여기서 난 외출준비를 하고 우편취급소에 다녀와야 했다.

우리가 개인 인증을 하기 위한 수단은 Personal code 4자리 숫자이다. 이 숫자는 등기우편으로 집근처 우편취급소로 배달되어 있을 것이고, 앞서 수령한 우편물 중 이를 안내하는 안내장 하단을 절취해 신분증과 함께 들고 가면 Personal code가 들어있는 최종 우편물을 만날 수 있다. 자, 이제 컴퓨터 앞에서만 작업하면 된다.

예측불가한 나라에선 '코드를 주문하고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라는 상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Personal number(세무서에서 받은 PN)와 Personal code(등기우편으로 받은 4자리 숫자)를 입력하고 나면 위와 같이 전화 인증을 해야 한다. Order라고 되어 있지만, 인증 문자 받기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사실 뭘 이미 갖고 있는지 헷갈리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졌지만... 안 갖고 있는 게 틀림없음!

한번 실수로 은행방문의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감히 허튼짓은 하지 않는다.

입력할 전화번호는 +(더하기) 문자부터 국가번호를 다 입력해야 하는데, 어라 한국 번호도 되는 건가? 호기심도 잠깐 생긴다. 하지만 난 미개한 expat이기 때문에 시킨대로만 움직일거다.

한국에서도 읽지 않는 약관 문서를 여기서 읽을 리가 없다.

내 연봉을 내보여야 했듯, 은근한 관료주의 앞에서 어설픈 외국인 개인의 운신의 폭은 거의 없다. BankID 관련 약관 문서가 맘에 안 든다고 지금까지의 일을 없던 걸로 할 것도 아니므로 읽었다 치고 체크.


전화번호 입력하고 정보처리약관 체크하고 수신한 8자리 숫자 코드를 입력하노라면, 한국에서 뭔가 온라인 결제할 때 자주 하던 루틴의 기시감이 든다. 어, 나 이거 많이 해봤는데, 왠지 익숙한 시스템이 열리는 건가 살짝 기대감도 드는 순간.

이제 BankID 앱을 실행시킬 시점이다. 앱을 열면 아래와 같이 New BankID를 인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아직 은행의 인증정보와 연동되기 전이다.

위 버튼을 눌러 앞서 PC 화면에 나왔던 QR 코드를 인식시키면, 아래와 같이 Activation이 된다.

Face ID 사용 여부는 나중에 BankID 앱 설정에서 바꿀 수도 있다.

Face ID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NO THANKS'를 선택하고 BankID 앱 비밀번호 6자리를 설정하게 된다. 입력, 확인 입력까지 하고 나면 이제 사용할 준비가 끝났다.

핸드폰에서 설정하는 동안 PC 화면은 이렇게 대기하고 있다.
Activation이 끝나면 PC 화면에 나오는 완료 메시지

PC 화면에서 위처럼 나오면 모바일 인증 연동이 끝난 것이다. 발급이 끝났다는 의미.












모바일 BankID 사용 순서
    : 앱 실행 → QR code 인증  → 비밀번호/Face ID 인증

1. BankID를 필요로 하는 PC 웹사이트에 접속한다.
예를 들어, Nordea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제 우린 BankID를 사용해 로그인 할 수 있다.

위처럼 선택하면 QR code가 나타난다.



2. BankID 앱을 실행한다. 'Scan QR code' 버튼을 눌러 PC 화면의 QR 코드를 읽는다.


3. QR코드로 기기인증을 하고 나면, 아래 화면과 같이 사용자 인증을 위해 앞서 설정했던 6자리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온다. BankID 앱에서 Face ID 등을 입력해 놨다면 아마 이 화면 대신 Face ID 인증을 시도할 것이다.



 




은행 웹사이트에 로그인 하고 나면 나의 잔고 현황 오버뷰가 헐벗은 모습을 초라하게 드러낸다.


기왕 들어온 김에 신규 발급했던 Debit card 현황을 확인해 보자.

Activate 하고 나면 오른쪽 메뉴가 활성화 된다.




도난을 대비해선지 사용 가능 국가를 지정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선택 옵션이 다양한 건 아니다.

엄격한 보안 장치면서 Nordics라는 애매한, 또는 자기중심적 시선이 깔려있다.


온라인 결제는 이 페이지에서 사용가능 confirm을 해야 1시간동안 허용이 된다 (모바일 앱도 되는지는 확인 필요).

한가지 웃겼던 건, 여기서 이리 Activate 하고 나면 우편으로 비밀스럽게 받았던 4자리 핀번호는 쓸 일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 위의 화면에서 'View PIN'을 선택해 보면 아래처럼 그 비밀 핀 번호가 이미 등록되어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누가 훔쳐보지 않게 조심하라는 인간적 당부가 담겨있다.

Show PIN 버튼을 누르면 4초 가량 그 핀 번호를 보여준다. 이건 뭐 바꿀 수 없는 모양.


이제 이 망할 BankID를 통해 은행 앱이나 은행 홈페이지, 기타 관공서, 의료시스템 등등 BankID 타령하는 수많은 스웨디시 네트워크에서 납세자의 권리를 조금씩이나마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고트족 은퇴 노령층의 부양 세원을 위해 일하는 수입 노동력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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