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지원했을 때 다른 한국인을 소개받아 회사 이야기와 이 곳에 사는 삶에 대해 들어볼 기회를 얻었다. 회사에서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 역시 나에 대한 느낌을 회사에 전달했던 것 같다.
인터뷰가 몇 번 거듭된 후 채용이 확정된 즈음, 나는 당돌하게 물어보았다. 나를 뽑으려고 결정한 이유가 뭐냐고.
담당하던 매니저는 이런 저런 긍정적 평가를 알려주었고, 조금 겸연쩍어 하며 덧붙였다.
"근데 그가 말해주길 니가 나온 대학이 한국에서 꽤 유명한 대학이라고 하더라. 난 그런 것 사실 잘 안 보는 편이긴 한데 말야."
학교를 졸업하고 20년이 지났다. 시대도 변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 졸업장은 사실 거기서 뭘 배웠는지가 아니라, 그곳에 들어가고 졸업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인고할 수 있는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기초체력 점수였던 것이다.
날고긴다는 세상 속에서, 십대에 만든 결과가 큰 영향을 준다는 건 사실 시대착오적이고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우린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경험과 지능과 지식에 값을 매기고 결과로 승부하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외치지만, 전장에 나설 땐 저력을 믿을 수 있는 기본기를 살피게 된다고.
삶의 고비에서 가장 위태로운 건 자기 자신의 인내력이고, 그걸 참아내 더 큰 목표-설사 그것이 제도교육과 지배세력의 농간일지라도-를 위해 버텨내는 근성이 바로 대학 졸업장에 남아있다.
대학졸업장은 대학의 간판이 아니라, 철모르던 아이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내딛으며 첫번째로 마주하는 싸움의 흔적이다.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보다 살벌한 전쟁터이지만, 그래서 그 살아남은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과 비견될 수 없도록 강인한 이유이다.
https://www.instagram.com/reel/Csfz8k0g95q/?igshid=MzRlODBiNWFlZA==
'어쩌다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궤도를 벗어난 혜성처럼 산다는 것 (0) | 2023.07.17 |
---|---|
장바구니를 들고 오며 (0) | 2023.07.17 |
Empathyless motivation kills the others. (0) | 2023.07.13 |
비표준적 삶 (0) | 2023.07.03 |
카이로스의 뒷모습 (0) | 2023.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