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길게 보면 공평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나의 맞은 편 인간의 삶을 살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상대 비교를 향한 공평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뿌린대로 돌려받는 긴 반복의 이야기였다.
무서운 이야기였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했던 아이들의 삶도 살아야 하고
그 부모의 삶도 살아야 하고
끔찍한 폭행과 잔인한 죽음의 삶도 살아야 하고
그 뻔뻔한 가해자의 삶도 살아야 한다.
남의 일처럼 보아 넘겼던 삶의 대가는 상대방이 되어 몸이 찢어지고 가슴이 찢어지며 배우는 삶이었다.
모두에게 친절하라는 말의 뜻이 정수리를 내리친다.
나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말이었다.
무슨 짓을 벌이든 무슨 말을 하든 그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살아가며 진정 무서운 순간은
뉘우칠 기회를 놓치고 대가를 치를 시간이 닥쳤음을 깨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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