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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우린 아라크네가 아니다

일요일 브런치 중, 엔드게임의 타노스가 남긴 마지막 대사가 뭐였는지 네 식구가 되짚어보다가 원문을 찾아보았다.

"I am inevitable."

스스로의 운명이 아닌 세상의 운명으로서 '어쩔 수 없는 존재'라 번역한 모양이다.
논란도 많다. '나는 신이다'라고 봤어야 하네 그건 지나치네 설전이 오갔다.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movie&wr_id=2292250

어벤저스 엔드게임 번역 거슬렸던 부분.(스포) - DVDPrime

타노스의 대사인 I'm inevitable 의 번역이 좀 아쉬웠습니다. 이걸 '나는 필연적인 존재다' 라고 번역을 했는데. 이게 잘 와 닿지도 않고 이후 이어지는 I'm Ironman. 과의 대비도 약했다고 봅니다. 저는

dprime.kr


근데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대사만 놓고 보면, 주어가 불분명해서 이상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너희들이 어찌할 수 없는 존재', '거스를 수 없는 존재'와 같이 확실히 표현하지 않아선지, 내겐 '나도 어쩔 수가 없는 그냥 그런 별볼일 없는 존재다'처럼 들렸거든.
천하의 타노스가 본인의 대업 핑거스냅을 앞두고 갑자기 양심고백하듯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구'라고 변명을 주워섬기는 뉘앙스 같아서, 도대체 저 연보라색 덩치가 뭐라는 거지? 싶었다.

사실 타노스는 저승사자처럼 본인의 숙명을 따르듯 파괴의 업을 이어가고 있었지, 개인적 분노나 초월적 권한을 위해 피바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신이다’는 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발언이 된다. 그는 자신을 우주의 균형이라는 섭리를 수행하는 대리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그보다 이런 번역이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신의(우주의) 섭리다."
"나는 세상의 운명이다."
"너희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번역의 월권은 논란을 낳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서사의 맥락 아닐까.

타노스가 신의 섭리를 휘두를 때 지구인들이 맞서 살아남은 이야기는, 아테나와의 시합에서 정정당당히 승리하고서도 '보잘 것 없는 인간이 감히 신을 능욕했다'는 이유로 잔인한 복수를 당했던 아라크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설사 신이 인간세상의 절멸을 계획하더라도, 인간들은 아라크네와 달리 끝내 이겨낼 것이라는 신념과 투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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