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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역사 속 가스라이팅

두 회사가 인수 합병하면 가장 피비린내 나는 파리 목숨은 피인수 기업의 경영진이다.
그러므로 두 기업이 서로를 삼키려 전쟁 중일 때 경영진은 경영권 사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 어떤 희생일지라도.


백제와 신라가 손바닥만한 영토를 놓고 뺏고 뺏기는 고지전 수준의 전쟁을 수백년간 이어갔던 원동력은 각각의 지배계층, 왕족과 귀족들의 지배력 쟁탈전이었을 것이다. 사실 한강 유역을 비롯한 많은 중간 지대가 세월 속에 두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속해갔지만, 지역민들이 소속이 바뀐 자신의 터전에서 원래 소속 국가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백성들의 삶은 어느 나라에 속하느냐, 어느 지배계층에 상납하고 종속되느냐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간 땅은 핏방울로 그은 선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일념이었던 건,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권력의 영역을 확보하고 유지하고 확장하려 했던 기득권 뿐이었다. 사막이 되어버린 바다처럼, 그들이 머물렀던 땅 속엔 그리 다녀간 여러 문화의 지층이 함께 섞여있는 이유다.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였으리라.

내가 신라를 유독 싫어하는 이유엔, 유전자로나 문화적으로나 친척뻘 되는 이웃을 멸하겠다고 멀리 오랑캐를 불러다 살육전을 벌이고 심지어 고구려 영토를 거의 날려먹은 채 엉성한 영토 약간을 불하받듯 얻고 만 어리석은 역사도 있고, 그걸 스스로든 후대사학자들에 의해서든 통일신라라는 가당찮은 칭송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가장 신물나는 면모는 백제와의 마지막 전투, 황산벌 싸움에 있다.
물론 백제의 계백도 정상은 아니다. 신라 비난에 앞서 이 정신나간 장수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배곯는 백성은 모르겠고 적에게 넘기지 않으려 군량미에 불지르는 패퇴군은 흔하지만, 자신의 식솔들을 마치 전리품감의 물건처럼 취급하여 칼로 목숨을 모조리 앗고 이게 너희의 치욕보다 나으리라며 살육한 그는 전쟁에 지치고 망국의 끄트머리 스트레스가 심해 대뇌피질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그토록 질 게 뻔한 전쟁이라면 애초에 식솔들 앞에서 먼저 제 목숨을 먼저 버릴 일이지, 저는 전투 나가서 역사에 남고 식구들에겐 선택지조차 안 주며 개죽음을 선사한 위인이다. 같은 논리면 병환 깊은 고령의 부모는 제 멋대로 고려장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런 선택과 행위를 비장함으로 포장한 지난 역사 교과서들은 반성 좀 해야 한다.

하지만 엽기적 행태는 바로 신라군 측의 화랑, 관창이다. 애초에 소년병을 써서 자살특공대처럼 사용한 신라는 최소한의 휴머니즘이 있는 사회인가 의심하게 만든다. 불교가 그리 융성했다면서 전쟁에서 동원한 병법은 비인간적임을 넘어 냉혈한에 가깝다.
앳된 소년 관창의 기량 부족을 알면서도 백제와의 전투에 보내 포로와 재돌격을 반복케했던 장본인은 그 아버지였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은,
1) 그 아비란 작자는 애보다 자신과 가문의 명예가 그토록 더 중한가? 이건 인간미 부족과 허영심의 문제라고 보인다.
2) 위 사유가 아니라면, 그 아비는 자신의 아들이 결국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로 인해 신라군이 동기부여 받고 기세가 솟을 수 있다면 희생양이 제 아들이어도 상관 없는 것인가?

사실 다른 이의 아들을 희생시켰다면 파렴치한이란 비난을 받았겠으나 본인 자식이라 마치 '본인의 희생'처럼 회자되는데, 엄연히 별개의 인간인 아들을 죽어서나 돌아오라며 내몬 사람으로 보자면 자식을 가문이나 본인의 소유물 이상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차마 첫 생포에 죽이지 못하고 어린 소년을 돌려보낸 계백이 그나마 인간답다 여겨졌지만 그도 매한가지인 게, 남의 자식은 인간미로 살려 보내면서 저 하나 믿고 살던 처자식은 전투 전에 패배확률 가늠하고선 제 손으로 죽인 금수 아닌가.

그 시대엔 계백이나 관창 애비나 흔한 사고 방식의 인물들이었다고 옹호할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그래, 조미료가 들어간 역사적 사실이라 치자. 다만 그들의 가족 살육을 두고 위인전의 탈을 씌워 아이들에게 읽히지는 말자. 정상적 유대관계를 지닌 유소년들은 그 사이코패스들을 왜 위대한 장수의 면모인양 칭송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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