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were fifteen presidents in the United States before Lincoln."
아직도 그 날이 선명하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내게 뜬금없이 '링컨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다'를 어떻게 영어로 말하겠느냐 물으셨을 때, 난 잠깐 고민하다가 저렇게 대답 드렸다.
그 때 내가 잠깐 고민했던 이유는, 그냥 직역하듯 Lincoln is the 16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답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쩌면 그런 답을 기대하신 게 아닐 것 같다는 막연한 직감이 순간 들었던 듯도 싶다.
능수능란하지 않지만, 향상시키려 딱히 노력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어를 주 생활 언어로 사용하며 지낸 지 일년 반이 지났다. 미묘한 감정과 자잘한 개인사를 일일이 전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쨌건 뭔가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듣는 일이 일상이 된 것 분명하다. 아직도 긴 휴가를 보내고 나면 원래 듣고 말하기 감각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곤 하지만, 주말 정도에서 받는 영향은 조금 미미해졌달까.
최소 두 가지 주로 쓰는 언어가 존재하게 되면서, 오래 전부터 외국에서 관심이 많고 배우려 애쓴 사람들이 가질 특질이 하나 떠오른다. 사피어-워프 가설처럼,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체계 - 특히 문법 -에 사고 체계의 근간을 둔다는 점. 난 비단 문법만이 아니라 어휘 영역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을 한다. 표현의 다양성은 그 관념에 대해 더 세밀하게 바라보고 익혀나가게 하므로, 해당 영역에 대한 논리적 사고 뿐 아니라 감정 다양성이나 기질도 지배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 본다. 아니, 멀리갈 것도 없이 한 모국어 안에서도 어떤 계층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화적 배경 및 태도를 갖추게 된다는 건 실험적으로나 사례로 익히 알려져 있잖은가.
내가 다른 이들과 만약 조금 달리 생각하는 태도를 이런 저런 면면에서 보여왔다면, 어쩌면 그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타언어에 관심이 있고 익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성향의 좋고 나쁨을 떠나, 나의 가치관이 나의 언어를 결정하는 것만큼 반대의 되먹임 영향도 상당하리라는 걸 새삼 느낀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같이 시간을 넘어서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더라도, 나의 모국어와 다른 문법과 다른 어휘와 다른 언어 감정에 무게 중심이 있는 언어를 배우는 인간의 삶은 그 전에 보지 못 했을 새로운 지평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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