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가방 무게 초과될까봐 두고 간 두 권의 책.
아내가 읽던 세이노의 가르침, 아들이 읽던 설민석의 삼국지.
짬짬이 읽어본 이 삼국지는 왜곡이 심하다. 삼국지를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 원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미의 부록에서 밝힌 각색의 수준은 과연 이걸 삼국지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크고 작은 흐름을 시도 때도 없이 바꿔놨다. 행여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쉬이 읽히고자 함이었다 치더라도, 생략이 아닌 변조가 수시로 난입하여 마음이 불편하다. 이걸 읽고 삼국지를 읽었노라 말하는 게 가당찮다 싶을 지경이다.
요약하자면,
1) 빠진 내용과 지어 끼워넣은 내용이 상당하다. 근데 그리 변조할 이유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머릿말에서도 해설에서도 그 사유를 밝히지 않아, 이 사람은 남의 '유명한' 소설을 본인 기준에서 재미있게 만든다며 임의로 각색하는 걸 가벼이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2) 다소 유치한 대화를 수시로 상상해 넣어 몰입을 방해한다. 어린이가 아니고선 그런 대화를 스스로 상상해야 독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요즘 어투를 남발하는 것도 무슨 사족인가 생각 들었다.
아직 다 읽지 않은 「세이노의 가르침」은 김승호씨의 「돈의 속성」과 흡사한 느낌이 난다. 부의 반열에 올라 자신을 추종하는 서민들에게 자비로운 화두를 설파하는 태도가 걸작이다. 마치 성불하지 못한 중생을 굽어살피듯, 하지만 그런 박애와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단 조금 더 거만하게. 나를 신격화 한다면 너희들에게 부자의 향기를 조금 보여주리니 맡아보거라, 식의 맛도 난다. 썩 유쾌한 가르침의 수업은 아니다. 우리가 부를 추구하는 마음 저변엔 부가 부족해 자존감이 낮아지고 서글퍼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런 이들을 속된 언어로 힐난하고 정신차리라 꾸짖는 건 고육지책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진정한 자아를 격려해 일으키는 데에 상처를 남긴다. 듣기 싫으면 어리석은 자신 탓하며 거지로 살든가,가 이 책의 저자가 일관되게 보이는 태도다. 독한 스승일지라도 세상을 까발리고 독설을 부라리는 것 이면에 상대를 존중하고 도우려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 하대와 적선의 마음가짐으로 훈계하면 티가 난다. 이런 싼티 나는 부자를 일컫는 말이 있다. 졸부. 그들의 책에선 철학 결핍으로 인한 교묘한 냄새가 풍긴다.
백번 양보해 그의 오만하지만 실리적인 지침이 담겨있다고 쳐도, 좋은 책이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어야지 문제풀이집이어선 간교한 처세술법에 다름 아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세상에 대한 겸손함이라곤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부류의 인생관을 헐뜯는 괴성을 읽노라면 눈을 씻고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2022년 시절에 동성애를 원나잇 항문성교나 하는 족속으로 깔보는 그 저급한 농담은 그의 하찮은 철학에 방점을 찍는다. 직원 덕에 돈 버는 걸 감사하지 않는 사장들에 일갈하는 사람이, 세상 뭇사람들 덕에 자신이 부를 누린다는 걸 망각하고 하대하는 꼴불견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지킨다. 논리라면 궤변이라 보아 넘기겠는데, 가식적 인성은 어디부터 짚어야 할 지 모를만큼 중증이다. 필시 이런 인격은 고생하던 초년기 잘못 형성된 대인관과 인생관 탓이며, 그 이전에 사랑받지 못해 구겨져 성장한 유년기 자아정체성이 게워낸 파탄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물질적 풍요는 그 근본 허기를 달래주지 못하여, 저자의 광기가 사방으로 독침을 뿌려대는 소시오패스가 되는 걸 막지 못한 듯 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장사치이면서 본분을 잊고 사방을 비하하니, "Don't bite the hand that feeds you"조차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랄까. 뇌물공여로 덕을 봐놓고 그 공직자와 체계의 허술함이 악의 근원인듯 혀를 차는 건 대체 무슨 유체이탈화법이란 말인가? 그런 식이면 일제 앞잡이들도 할 말은 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하고 능수능란한 본인 자랑과 끓어오르는 욕구불만을 시원하게 배설하는 카타르시스 책을 내면서 왜 돈을 받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책이 종이 낭비에 가까운 쓰레기임을 드러내는 저자의 천박한 인식 세계는 무수히 많은 행간에서 드러나지만, 소위 저자라는 이름조차 아까운 면모는 두 가지 정도가 뚜렷하다.
우선 제 책 이름을 가르침이라고 칭하는 시건방은 가히 놀랍다고 해야겠다. 공자의 제자들조차 위대한 스승의 문답을 '논어'라 명했다. 정작 고전의 겸허를 못 배운 얄팍한 교만의 뿌리는 처세술 중심의 싸구려 독서관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일관되게 '학벌 믿는 젊은 놈들'을 힐난하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눈만 높다며 비난 일색이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주위엔 정말 형편없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꼬여드는 모양인데, 그건 자업자득이고 본인의 낮은 자존감이 일궈낸 형상 덕분이다. 필시 본인이 갖지 못한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닥치고 새겨듣길 바란다. "이보시게, 학벌이 만능이 아님은 사실이나 그 친구들 나름대로 젊음을 희생하며 어두컴컴한 도서관에서 늦은 밤까지 피땀흘리고 욕구를 인내하며 달성한 결실이라네. 당신은 그들의 업적을 무시하며 돈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겠지만, 잠재의식 속 자아를 끄집어 내 치료부터 받게. 자넨 심각한 피해의식 정신병자라네. 아주 흔한 타입이야."
이쯤 되면 본명을 까밝히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짐작한다. 키보드 워리어의 현신이랄까. 저자와 비슷한 계층을 꿈꾸는 것은 매우 역겨운 일이다. 나아가 이 책을 잘 읽었다는 사람조차와도 연을 섞고 싶지 않다.
독후감의 결론은 이렇다. 두 권 다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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