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경제관념은 차치하더라도, 한국인이 기회비용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은 매우 본능적이다.
무언가 기회를 놓쳤을 때, 특히나 '취득 가능했을 기회'를 놓쳤을 때 우린 '아깝다'라고 말한다.
사전에선 이 단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아깝다
- 소중한데 잃거나 뜻대로 되지 않아 매우 섭섭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있다
근데 이 개념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소중한데 잃다: 이건 '갖고 있던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2) 뜻대로 되지 않아 섭섭하고 안타깝다: 이건 '아쉽다'와 비슷한 의미다. 즉, 무엇이건 원하는 바를 못 이뤘다는 뜻.
헌데, 한국인이 사용하는 아깝다는 말의 흔한 용례는 두번째 의미의 숨겨진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주식 살 걸 아깝다."
"그 버스 탈 걸 아깝다."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아깝다."
"상하기 전에 그 김치 먹을 걸 아깝다."
마지막 김치는 얼핏 물건을 잃는 경우라 아까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위의 예시처럼 '기회'를 날린 걸 아까워 하는 것이다. 좀 더 많은 효용을 누릴 수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순간의 착오로 무언가를 놓쳤을 때 우린 사실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물론 아슬아슬하게 뭔가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액면 그대로의 상황이고).
그럼 실제 잃어버린 것이 없는데, 사후에 무언가 '알게 되어 아쉬운 상황'은 대체 무엇이 아깝다는 말일까? 여기서 우린 한국인들이 이미 관념 속에 갖고 있는 '기회비용'에 대한 정량화 의식 구조를 엿볼 수 있다. 그 잃어버린 기회는 그저 재밋거리 시간일 수도 있고, 금전적 이득일 수도 있고, 소원하던 만남일 수도 있고, 시간이나 노력 같은 정성적 가치의 절약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더 많이 누리거나 덜 쓸 수 있었던 기회를 아까워 하는 것이다.
농구공을 골대에 던졌는데 링을 따라 돌다가 떨어지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아까비~'는, 결코 '아깝다'라는 단어를 영문으로 해석해서 전달할 수 없다. 그건 무엇이건 효용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경제적 관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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