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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스웨덴에서 집을 사라는 목소리들

일을 하러 이 땅에 도달해 한인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의 일관된 목소리, "빨리 대출 받아 집을 사세요. 계속 오르거든요."

탐욕스런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매비용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해 어서 집을 알아보고 사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직장의 동료들도 모두 그리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신념이 있었다.

"스웨덴 집 값은 수십년 간 올랐어. 그러니까 앞으로 더 비싸지기 전에 얼른 사."

물론 좁아터지고 낡은 집의 월세가 상식을 뛰어넘는 걸 생각할 때, 이리 쓰나 저리 쓰나 담보대출로 집을 사는 것도 꽤나 설득력 있고 합리적 선택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성을 따지는 엔지니어들조차 본인이 무지한 영역에선 감성적 판단을 하고 만다. 데이터 기반의 학습 어쩌고는, 과거 패턴의 기울기 추정에 불과한 걸까.

'여태까지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가 유일한 이유라면, 결국 논리적 배경이 하나도 없다는 소리다.

 

오를 지도 모르지. 근데 안 오르거나 내려가면 누굴 탓하나? 오르는 속도보다 금리가 더 빨리 올라 버티면 어쩌나? 하늘을 원망하나?

개인의 원망을 들어주는 포퓰리즘 유성우가 가끔씩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대책이 될 수 없다. 지금의 광풍 속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구전되는 전설을 믿듯 앞날을 예견하고 있다. 난 그런 식으로 항해할 수 없다. 조상 탓 하며 거꾸러지긴 싫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부동산 불패 신화'의 구문 속엔 이미 신화적 믿음이 담겨있다. 아직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명석한 이론보다 신화를 믿고 싶어한다. 신화는 늘 아름답기 때문일지도.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면,

한국에서나 스웨덴에서나 자기자본투입율은 중요하다. DSR이건 DTV건 DTI건 결국 나의 down payment 가 얼마냐에 따라 상환원금과 이자(심지어 이자율까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관대한 스웨덴 은행들은 부동산 불패의 북구신화라도 믿는 모양인지, 80%에 육박하는 DTV를 허용하는 듯 하다. 담보가 단단하면, 많이 빌려주는 게 이자 장사의 기본 아닌가? 어차피 대출이란 통화량을 늘리는 수단이니 BIS 이내에선 거리낄 게 없다. 하지만 빌리는 입장에선...

1) 집을 사도 월 관리비가 만만찮게 들어간다. 커뮤니티 운영에 따른 비용 같은 것도 있다. 5억 정도 하는 아파트를 사도 매월 60만원 정도는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로망이랍시고 하우스(단독주택)을 구입했다간 끝없이 이어지는 유지보수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깔끔한 신축 아파트일 수록 avgift(관리비)가 커서 70~80만원 수준이 될 수도 있다.

2) 집을 구매할 땐 별도로 드는 세금이 없다. 중개수수료도 매도자가 부담하는 것 같다. 중개수수료가 거래금액의 일정 비율이기 때문에, 중개인은 완전한 매도자 입장에서 가장 높은 값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지. 매도자는 양도소득세를 상당히 낸다. 이후 신규 부동산을 구입하면 이 세금을 약간 보상해 주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마지막에 팔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 상당한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도세가 대체 얼마길래...?

따라서 총 대출금과 대출이자율, avgift 등을 감안해 이것이 월세보다 유리한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집값이 어디서나 오르던 활황기라면 자산가치가 오르는 점이 여러 비용을 상쇄해 주겠지만, 이는 한국이건 스웨덴이건 이제 주의해서 가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스웨덴은 부동산 거품 측면에서 상당 기간 조정 없이 치솟아 올랐고, 한국과 달리 이민자 유입에 따른 주거 수요도 작용을 하기 때문에 정책 등으로 인한 영향도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예컨대 4백만 SEK을 연이율 6%로 대출하면 월이자 2만 SEK, avgift 등 월관리비 5천 SEK이면 매월 2만5천 월세랑 같아지는 것이다. (월세엔 보통 전기, 수도 등의 utility 비용 포함되니, 월세보다 자가보유비가 더 비싼 셈)
아래의 예시 집 월세가 과연 25000SEK이나 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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