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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민자의 의무 - 고국의 정치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여기서 이민자란, 반드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여행자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상호존중 에티켓을 넘어서, 거주자로서 가져야 하는 의무는 보다 더 크고 무겁다.

본래 이민이란, 하려는 사람이 신청하는 것이지 수용 국가가 헤드헌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수요자가 상대를 존중하고 맞춰야 함은 다분히 호혜적으로도 타당하다. 수용 국가는 기존 국민들과 차별하지 않고 이들을 안정적으로 사회 인프라에 받아들이는 구조적 노력만 하면 그 이상은 의무라 보기 어렵다.

반면 이민하는 자들은 기존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이들의 삶을 안전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해롭게 해선 안 된다. 불가피한 어떤 상황이 아니라면, 자유의지에 기반한 행동들이 기존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순전히 이민자의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

스웨덴에는 2015년 기준으로도 27%에 달하는 이민자 인구가 있다고 하는데, 2023년 상반기에만 4만명이 넘는 신규 이민자가 생겨났다. 이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스웨덴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으로 전체 인구의 0.4%에 달한다. 그 전부터 살고 있었을 걸 생각한다면 이미 수백만명의 이민자 혈족이 터전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근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아랍계 난민/이민의 증가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 이들은 오랜 내전과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스웨덴에 유입된 경우도 많아 보인다. 그러하니, 이 곳에서도 고국의 상황에 민감한 동요를 일으키며 때때로 시위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집회의 장소를 제공하게 되는 스웨덴 현지의 입장이 난처하다는 것이다. 자국의 사건이면 스스로 해결하면 될 일인데, 타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일어난 시위가 해당 국가 대사관 등을 향하게 되면 이 나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내 가족이 다니는 회사의 물건에 불만이 있다고 그 본사에 가서 집회를 하면 가족의 고용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듯, 스웨덴인들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까? 워낙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평온한 태도만 보이는 민족이라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대놓고 물어봐도 아마 얀테의 법칙 같은 답만 할 것이다), 행여나 국익에 손해가 될까, 결국 자신의 삶에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신경쓰긴 할 것이다. 얀테의 법칙 속내처럼, 해코지는 늘 불편한 염려꺼리다.

올바름을 위한 투쟁이 비난받아선 안 된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지 살다보면 점점 모호해지는 마당에, 특정인이나 세력을 악의 축으로 놓고 과격한 비난을 꼭 해야만 한다면 주변을 고려하는 배려도 필요하다. 더욱이 자신이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는' 상황이라면 그 안전을 제공한 곳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이민자의 의무 아닐까. 모든 곳이 소요에 휩싸이고 안전한 곳이 남지 않게 되면, 자신들의 목소릴 외칠 수 있는 곳 역시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들의 절박함을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그럼에도 그들이 지켜야 할 선과 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이 시민권을 받았든, 영주권을 받았든, 난민으로 머물든, 어떤 사상을 어떤 강도로 지녔든,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천킬로 밖의 악당들에게 마땅한 비난을 퍼붓는다 생각하겠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옳은 구호는 없다. 비단 스웨덴 원주민들 뿐 아니라, 더불어 사는 다른 이민자들조차도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 다양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서, 정의를 부르짖는 건 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