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참 많이 쓰이는 표현인데,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황당하게도 이름 그대로를 읽지 않나, 무슨 말인지 납득이 어려운 학술적 용어 설명만 달아놓질 않나, 실망스럽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이게 뭔지 몰랐던 걸까.
구글 번역기는 아주 조금 상황이 낫다. '자리 표시자'라고 번역하는데, 뜻을 알고서 보면 대략 비슷한 의미로 접근까진 한 듯 하다. 그러나 placeholder의 원래 뜻 자체가 미묘하여, 적확한 한국어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건 매우 까다롭다.
Placeholder는 place를 hold하는 것이란 정의에서 시작해 이해해야 한다. 자리를 붙들어 놓는 것, 또는 자리를 맡아놓는 것이라 봐도 좋다. 그렇다고 '좌석 예약'의 의미는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 문서 내 글이라든가 시스템 설계에서 '확정되지 않은 무언가'의 자리를 미리 잡아놓는다는 의미이다. Draft 버전의 문서에서 '아마도 이런 내용이 이쯤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내용은 나중에 채우고 빈 자리를 표시해 둔다'라고 생각하자. Outlook 등에서 다자간 회의 일정을 잡을 때 '아마도 이 날쯤, 또는 매 주 이 날 이 시각에 정기 회의를 할까 싶은데 (그 때 가서 취소하더라도 일단) 시간을 확보해 두자'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placeholder가 있으면 그 시각에 다른 것(문서의 내용이나 구조, 회의 일정 등)이 치고 들어와 다시 조율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임시 선점'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용어이다.
어제 있었던 회의에선, 기존의 단일 구조를 다중 구조로 설계하자는 논의를 하면서 "아직 다중 계층의 구체적 임계값을 정하기 어려우니 placeholder로 포함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구조적으로 마련은 하되, 활성화는 on/off 할 수 있도록 해 추후 실제 사용성을 반영하자는 이야기다.
또 다른 경우에선, 설계 문서의 하위 항목을 정의하고 문서 구조는 만들었지만 상세 설명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빈 박스를 그리거나 아무 글이나 적어두어 읽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대신 "This is the placeholder text until the details to be defined." 식으로 적어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조적 완성에 가까우면서 'TBD' 같이 무얼 더 해야 하는지 모호하게 만드는 걸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그 이름을 돌아보면, place란 공간만이 아닌 시간, 흐름, 만들어내는 대상 무엇에서건 적용이 된다. Holder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일단 맡아두는 장치가 된다. 실제로 일정표에서 placeholder로 잡힌 시각이 다가와 '확정'이 되면, 실제 회의나 행사 이름과 상세 내용을 갖는 '진짜 일정'이 새로 등록되고 placeholder가 삭제되기도 한다. 마치 '예약석' 표지를 떼고 그 자리에 앉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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