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후반일 그는 오랫동안 안나푸르나를 동경해왔을 것이다. 장대하고 험준한 그 산자락을 내려다보며, 극기와 보람의 땀을 훔쳐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즐거울 한창의 나이인 10대 아들은, 기특하게도 종종 아빠를 따라 나서 주말 산행 동무가 되어 주었다.
몇 년 전 산 정상의 바위에 걸터앉아 그는 말했다. "우리 히말라야 한 번 가 볼까?" 아들은 아버지의 눈에 맺힌 꿈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네, 좋아요."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봄이나 가을이 제격이었지만, 아들의 방학을 기다리며 겨울 산행을 준비했다. 아이젠을 신고 피곤한 걸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와도, 머잖아 만날 고산의 절경을 향한 설렘은 피로를 녹여주었다. 사춘기가 한참 짙을 아들에게 고마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허기를 달래고, 안나푸르나에 대해 찾아 본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산은 부자 간의 조용한 회랑이었다. 자신의 소망을 사랑스런 아들과 이룰 생각에 그는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늘 가벼웠다.
아내는 조금 걱정스러워했다. 기껏 산에나 간간이 오르던 남편이 아직 앳된 아들을 데리고 잘 다녀올지 염려가 되어 기어이 공항 배웅길에서도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딸아이는 두 사내가 떠나는 길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 눈빛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아기처럼 물고빨며 귀여워 해주던 아빠랑 얼마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건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닌지 코가 빨개진다. 아들은 엄마에게 씩 웃어 보였다. "너무 걱정 말아 엄마. 금방 다녀 올께."
그들은 여느 날처럼 오손도손 산에 올랐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살갑게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https://youtu.be/OVdMNL_l9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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