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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다조은 할아버지 선생님

아내는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가 화통한 그 분이 일본 어깨 두목 느낌도 있다 했다.
아마도 담배 깨나 태우셨음직한 낯빛은 붉은 끼로 어둑했지만, 자글한 눈매로 사람좋은 눈웃음을 지으시며 아이들과 아내, 심지어 내 진료 때에도 넉넉한 목소리로 안심을 시켜 주었다.
우린 그의 성함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냥 할아버지 의사선생님, 할아버지 원장선생님이라 불렀다. 다조은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우리는 그의 사위일 거라 생각한 '사위 의사'를 그냥 '사위'라고 불렀다(결국 확인한 바로는 처남이었다). 할아버지와 사위가 운영하는 그런 동네 병원. 우리 가족은 병명이 분명하고 가정의학과에서 대응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는 경우, 또는 급한 상황에 긴 대기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나 1차 진료를 위해 이 의원을 찾았다. 다조은가정의학과의원. 병원이 귀하던 시절 동네에선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유일한 한약방에 가야했던 것 마냥, 의술의 신뢰를 쌓기 어려운 이 시대 우리 가족이 일단 믿고 가는 병원 중 하나였다(나머지 하나는 김응학 치과다).

할아버지 선생님은 2019년 독일 이직 관련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의 발가락 습진을 무좀으로 오인하시어 내게 좀 더 긴 시련을 주시긴 했고, 그 뒤에도 무좀 전문의(?)로서 또 찾아온 나의 습진을 무좀으로 확신하신 바가 있다. 큰 일까진 아니었으나 오진임은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조은은 믿고 가는 병원이었고, 회사 정기검진으로 받은 대학병원 검사결과지를 해석해 달라고 찾아가는 곳이기도 했다(대학병원의 정기검진은 설명과 문진이 정말 형식적이다). 불과 몇 달 전 그리 찾아가 나의 미달수치들을 보며 걱정했을 때, 할아버지 선생님은 내게 그리 걱정할 것들은 아니니 꾸준히 몸을 돌보면 된다고 쓰다듬는 조언을 해주셨다. 내시경 그만 빼먹으라는 조언과 함께.
그리고 얼마 전 B형간염 예방접종 3차 시기가 출국에 빠듯함을 걱정했더니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맞고 가라는 의견과 더불어, "스웨덴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란데."라고 김응학 선생님처럼 말씀하셨다. 두 분 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러 오는 수많은 환자들 돌보느라 삶의 로망을 찾아나서보지 못한 것이리라.

그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보이지 않아 걱정스러워 하면서, 아내와 난 다른 상황이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리고 지난 주 유선이와 나의 코로나 확진 처방을 받은 날 조용히 할아버지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었고, 지난 번 '오시기 어렵다'던 대답 너머 진실을 듣게 되었다.
"벌써 3주가 되었네요... 돌아가셨어요..."

좋은 사람들은 다 일찍 떠나버리는 것 같다는 아내의 푸념이 와닿는다.
폐암 4기의 몸으로 눈웃음을 가득 담고 나의 스웨덴 행을 부러워하고 몸조심을 당부하던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 말을 전하던 '사위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천가지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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