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요즘 즐겨보는 주말 드라마 '왔다 장보리'.
배우 김지훈과 오연서가 분한 이재화, 장보리 뿐 아니라, 어린 비단이와 도씨 아줌마까지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
매 회 쭉쭉 나가는 진도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수는 바로 악역 연민정을 맡은 이유리의 연기다. 정말이지, 실제 인물이라면 싸다구를 날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상의 지존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얄미운 수준을 넘어 사악하게 사람을 이간질하고 약점을 잡아 흔들어대는 폭력배의 그것과 같아, 남녀 배역을 떠나 진정한 악역이라 할 수 있겠다.
근데 그 배역...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름 그대로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존재 같다.
의도와 방법이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하지만, 본연의 목적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개인의 영달' 이상의 것이 아니다.
배부르고 등따시게 자는 것 넘어... 출세하고 기득세력에 편승하려는 욕구는 그녀만이 유별나게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밥집 엄마 등쳐먹고 그 돈으로 도박이나 유흥을 즐기지도 않았고,
남을 살해하거나 사주하지도 않았고 (47화에선 거의 죽일 뻔 했지만),
양부모나 시댁의 재산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것도 아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뭇 사람들이 그런 출세지향적 상황에 있다면, 연민정보다 더 세속적이고 금전만능적 행보를 걸었을 것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던 그녀는 오히려 "나도 재벌가 만나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어"와 같은 외마디 속에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욕망을 솔직하게 까발리고 있다.
누가 연민정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녀는 바라보는 우리의 내면에 꼭꼭 숨겨둔 원초적 욕망의 알맹이를 꺼내 놓은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가 늘상 포장지로 쓰는 절제와 체면의 껍질을 덮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극중 대사처럼, "난 억울해!"라고 외칠만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내면 속 자아에게 "억울했지? 슬펐지? 힘들었지? 외로웠지?"라며 보듬어 줄 순간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