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울 오후 서너시의 풍경이 한여름에겐 자정의 풍경이다.
겨울은 그리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
맞는 말이다. 세상은 그러하다 들었다. 우린 왜 공평함을 찾는 걸까. 이익과 피해의 불공평함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헌데 전적으로 이익 보고 피해 보는 불공평함은 어떤 것인가. 모든 불공평함은 불합리하고 척결할 대상인가.
음양은 섞이지 않는다. 균형 속에 어우러진다. 공평함은 엔트로피의 최대치다. 우주의 죽음이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에게 공평한 결말이다. 옴니버스 속 어떤 이야기는 짧고 어떤 이야기는 길다. 어떤 이야기는 희극이고 어떤 이야기는 비극이다. 각 이야기는 공평함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 권의 책 속에 모인 저마다의 이야기일 뿐이다.
심박이 멈추는 것이 공평한 순간일까. 그 평탄한 직선처럼. 에너지가 공평해지는 순간 모든 동력은 사라진다. 우린 크고 작은 불공평함이 빚는 위상차로부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겨울은 그리 말했을 것이다. "이건 그저 다름이야. 나의 낮은 짧지. 대신 나의 밤은 가장 길어. 내겐 동지가 있거든." 모두가 낮의 빛을 추앙한다고 나도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설사 빛과 온기를 더 갈망한다더라도, 겨울이 쓸모 없는 것만은 아니다. 기대와 설렘의 면면에서 이들은 루치아의 날에 초를 밝힌다. 이제 곧 여름이 올 거라고. 지금이 가장 깊고 어두운 순간이라고. 이제부턴 밝아져 갈 거라고 말하면서. 변곡점이 희망에 관한 이정표라면, 동지보다 더 희망적인 시점은 없다.
여름의 정점에서 겨울을 읊는다.
건너편 반년의 대척점을 바라보며 지나간 겨울을, 다가올 겨울을 북녘 하늘 너머에서 상상한다.
그리움일지도 각오일지도.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날이라면 담대하게 걸어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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