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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4위의 마음은 복잡하게 담담하다

점잖았다던 그의 토론은 품격이 있었다고 한다. 최소한 두 명의 정상적 인간이 있어서 다행이었을 그 자리. 난 그 대선 후보 토론회를 시청하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live/n9z4cSJK6rk?si=c1Y6qdFDM9MWvW7X&t=270

흔히 순위권은 3위까지를 일컫는데, 4위는 썸네일에조차 나오지 않는다.

 

큰 격차의 출구조사 결과는 최종 성적표와 진배없다. 흔들리는 눈빛이 처연하기도, 수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맞잡은 손은 노동쟁의의 역사와 같다. 날실과 씨실은 약하지만 맞잡으면 버틸 수 있던 과거. 투쟁을 말하지만 그들의 투지는 사실 생존이 걸린 사투에 가깝다. 남의 것을 탐하려고 투쟁하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금메달의 승리를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승리를 꿈꾼 적이 과연 있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그들이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 시도의 흔적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갱도에 갇혀 있을 때, 구조대의 삽이 바위를 내리치는 소리라도 들려주기 위해. 그래서 그들은 늘 4위이면서 또 다시 4위가 되기 위해 매 5년마다 전의를 가다듬고, 목청을 높이고, 손을 맞잡는다. 살아남아 움직이는 것이 바로 투쟁이다.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후보 심상정에 비해 절반 이하의 득표 수, 득표율을 보였지만, 그는 놀란 것 같지도 낙담하는 것 같지도 않다. 2위, 3위 당처럼 착찹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이 늘 4위를 해 와서 익숙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이 경기에 참여하는 대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그들의 지지자들처럼, 그들도 매 선거를 살아내는 걸까.

 

어쩌면 그는 그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사상 최대의 투표율을 보인 이번 선거. 그럼에도 가장 약한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그들의 당이 이처럼 낮은 득표율을 보인다는 건 어쩌면, 그들이 나서서 대변해 줘야 하는 정도의 사회적 약자가 이제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방증일지도. 그게 사실이라면, 그게 현실이라면 차라리 나은 걸지도. 4위의 복잡한 눈빛은 그런 마음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런 편이 사명을 다 한 자에겐 조금 위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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