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가는 극장은 그나마도 아이들 (만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라, 어쩌면 이 영화는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으면 안 보고 지나갔을지 모르겠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픽션은 나중에 진실을 듣게 되면 실망하기도 한다. 뭐, 그런 핑계로 마치 '뻔한 이야기 이미 다 아는 듯' 굴며 이 영화를 폄하했을지도 모르지.
이 영화는 슬프다.
모티브가 된 실제 이야기는 접어두고 영화 이야기만 해보면, 기차역은 사건의 중요한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너머에 있다.
어쩌면 반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뒤늦게 깨닫는 순간
그 현실을 함께 느끼는 우리는 이미 슬픔 속에 들어와 있다.
모든 게 선명해지면서 모든 게 가슴 미어지는 그 순간이 계속 뇌리에서 맴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려운 건 어느 자식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발 늦은 사람은 그래서 더 슬프다.
송라희(임윤아)가 장준경(박정민)과 함께 주연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의외다 싶었지만, 그녀는 사실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녀가 없으면 이 영화는 무겁고 슬픈 눈물로만 만들어질 것이다.
장태윤(이성민)이 보여주는 아버지란 어깨는,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계속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들을 수 없을 그 심경을 대신 말해주는 장태윤에게 고마운 생각마저 들었다.
학원 끝난 아이들을 각자 하나씩 데리러 가 부랴부랴 들르미에 모여 저녁을 먹고 8시 20분 영화를 보러 갔다. 끝나고 나오니 (당연히) 깜깜한 밤이고 안내원이 보낸대로 내려가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무슨 도둑이 된 기분이다.
"이 언니 예쁘다~"
유주는 이수경 배우(장보경 역)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왠지 익숙한 느낌에 계속 떠올리다 보니, 어머니 고등학교 시절 모습과 매우 닮았다. 아내는 의구심을 표했다.
가까운 롯데시네마가 없어서 투자자 지급용 영화예매권은 쓰지 못하고, 따로 4장을 끊어 갔다. 보고나니 잘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든다. 펀딩은 이미 한 주제에 말이다. 대박나면 좋겠다. 배우들 연기가 참 좋았다. 집에 들고 온 팸플릿을 보니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이장훈 감독 작품이다. 다시 돌이켜보니 매우 비슷한 감성이 있다.
사실 영화 펀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투자가 아니라 후원이긴 했는데,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2016년 영화 「귀향」이었다. 실화 바탕이라는 점에선 「기적」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역사적 비극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암튼 당시에도 사은품(?)으로 관람 티켓을 줬는데 끝내 가서 보지 못했다. 차마 그 누이 같은 아이들이 유린당하는 걸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울렛 폐점 뒤 영화관에서 나오는 길이 익숙치 않아 엄마 아빠가 잠깐(?) 갇히는 사태가 기억에 깊이 박힌 모양이다. 오는 길 내내 계속 재잘대는 걸 듣다보니, 영화 엑시트처럼 시나리오라도 쓸 기세다. 어른들의 감정은 아직 영화 엔딩 크레딧에 잠겨 있는데, 말미부터 엉덩이를 꼼지락대던 꼬마들에겐 그 작은 사건이 오히려 길이 남는 추억이 되겠다.
아이들과 늦은 밤 영화관에서 나오는 일도 처음이다. 원래라면 지금쯤 빨리 자라고 닦달해야 옳을 시각인데, 가을의 밤은 선선하고 조용하게 우리의 귀갓길 산책을 감쌌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마스크를 잠깐 벗으니 낯설면서 그리운 느낌이 든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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