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크리스토프의 결혼 생활은 생각과 다를 것이다.
엘사도 따로 나가 사는 아렌델 궁전에서, 그는 은연중 자신을 낮잡는 올라프와 스벤 사이에 끼어 안나의 시선을 온전히 받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밤마다 외로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숨을 지을 수도 있다. 그는 천성이 우유부단하니 그것이 큰 스트레스일지언정 스스로 해결하거나 담판을 짓지도 못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나가 자신의 삶을 '엘사 보호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1편부터 꾸준히 드러난 모습인데, 안나는 어린 시절 자신을 위험하게 만든 뒤 칩거하는 언니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회유하고 달래고 살펴보는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자매의 관계란 본래 그런 성질을 가졌는지 모르나, 자신의 정체성과 운명을 밝히는 데 모든 주안점을 둔 엘사에 비해 안나는 - 덜렁대는 성격에 안 어울리게도 - 언니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으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는 인간으로선 매력적이고 도드라지는 장점이지만 (사고뭉치) 엘사를 언니로 둔 안나 입장에선 평생의 짐일 수 있다. 근데 그녀는 그런 숙명을 한탄하거나 원망할 기색조차 없다.
본 글로 돌아오자면, 크리스토프는 안나 마음 속 엘사가 차지한 공간의 빈 틈에 어떻게든 자릴 잡으려 애쓰겠지만 아마 녹록치 않을 것이다. 그도 운명이다 깨닫고 마음 고쳐먹는 날엔, 어쩌면 홀연히 스벤과 함께 북쪽산 어귀의 골짜기로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크리스토프의 순애보에겐 차라리 나은 결말일지도.
그러고 보면, 둘의 모처럼 듀엣곡 「Get this right」이 최종 OST에서 삭제된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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