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돌아온 탕아의 사소한 이유

아로미랑 2015. 8. 12. 00:09

무슨 기백에선지, 잘 다니던 첫 직장을 때려치고 새로운 일터로 갈아탈 때, 사람들은 반쯤 부러운 눈길로, 반쯤 걱정하는 눈길로 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조금은 다르지만 원래 있던 둥지 근처로 돌아온 내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묻곤 했다.

"결국 돌아왔네요~"


기술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나는 엄연히 다른 직장에 자리를 튼 것이니, 그들의 표현처럼 '돌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같은 그룹 다른 계열사로 전입했다는 건 '돌아온 탕아'의 처지를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깊은 배경에는, 그들의 표현처럼 '돌아온 것'이 맞다고도 할 수 있다.


말 참 복잡하게 하네.


암튼, 그 놈의 '돌아오게 된' 사연은 구구절절 표면적, 내면적 이유를 덕지덕지 달고 있지만,

같은 그룹이 공유하는 문화적 코드에 대한 기대감이 분명 존재했다.

그걸 향수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겠다만, 내 생각엔 일종의 '신뢰'라 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일년 반 가량의 시간 동안 머문 곳에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그야말로 쌍욕'을 먹고 있는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첫 이직 때 모호하게나마 비교 잣대에서 고려했던 부분이긴 한데, 막상 그 조직 속으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영향력 있는 요소 같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비자금 조성, 배임, 불법 승계, 탈세 및 불법 증여, 무능한 경영, 금전우선주의 경영 등으로 도덕적 비난이나 법적 처벌을 받고 있는 기업 오너들은, 기본적으로 그 경영 이념이나 가치관 자체가 글러먹었기 때문에 조직구성원인 임직원을 부품 취급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존중받고 대우받고 보상받고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인 것이다. 즉, "나는 내 일만 하며 만족할 보수만 받으면 된다"는 전략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절대로 "니 일만 하며 만족할 보수를 받으면서 안정적 지위가 보장되는" 회사가 될 리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창업이념, 경영이념, 현 경영진의 가치관이 이직 시 필수 고려 대상인 이유다. 비록 전 직장이었던 계열사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며 '사필귀정'을 믿는 까닭이다.

현 10대 대기업 그룹사 중 유일하게 창업주 집안 싸움이나 불법 행위로 감방 신세를 지지 않은 그룹이라는 사실은, 내가 전 직장에서 또다른 이직을 고려할 때 크게 감안할 수 밖에 없던 요소였다.

늘 생각하지만, 삼성 그룹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편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