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일럿이 불편했던 이유
〈이 글은 해당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 비평과 배우 조정석에 대한 개인적 반감을 담고 있으므로 이런 논조를 소화하기 어려운 노약자는 일독을 삼가기 바랍니다.〉
1. 사실 그다지 웃기지 않았다. 웃음 포인트는 의도와 지점이 명확했고, 조정석은 늘 보여준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짐 캐리의 쉰내가 났다. 아마 사석에서 그는 꽤나 웃긴 지인이겠지만 배우로서 다양성이나 참신함을 보여주는 면에서 일종의 철지난 슬랩스틱 같았다.
2. 설정의 개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개연성은 여장에 속는 여주인공과 주변인 같은 황당의 핵심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주인공은 그저 직장생활의 표본을 따른 것 뿐인데, 구시대적 낙하산 사장 비위를 맞추다가 함께 목이 날아갔다. 그 억울함에 대해선 후반 (여장한) 본인이 한 마디 역성든 발언이 전부다. 현실에서라면 인생 공든 탑이 완전히 날아갔는데 고작 그런 하소연 한 번으로 감정을 추스릴 수 있는가? 맥락 상 스스로 성범죄자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3. 거대 항공사가 형식적 징계위원회를 통해 소명절차도 없이 여론에 따라 속전속결 토사구팽을 하고 만다. 그리고 영화 내내 이 회사는 이 따위 처리에 대한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4. 회식 자리의 성차별적 발언을 항의 한 마디 없이 녹취해 제보하는 것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 없이 처벌만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몰래 녹음하는 건 사실 통신비밀보호법 상 불법이다.
5. 여동생의 신원을 도용해 입사지원과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상당한 불법이다. 특히 의료정보와 공문서 위조가 포함되었으며, 상당 기간 항공기 조종이라는 산업기반시설을 운용했기 때문에 위반 법규가 한 두 영역에 걸친 게 아니다.
6. 여장이 통한다는 어이없는 설정만큼이나 회사 입사 전형의 허술함은 억지스런 이야기 전개를 위해 판타지에 가깝게 그려내었다. 조금은 머리를 굴려 사실성을 더 부여할 수 없었을까? 솔직히 중간중간 외계인이 등장하는 것에 비견될만큼 최소한의 집중도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7. CG는 우뢰매 시절보다 상당히 나아졌다.
8. 이혼 사유가 허접하다. 가족일에 무심했던 이유로 전재산을 내놓고 일방적 이혼 당하는 게 가능한가 모르겠다. 아이에 관해선 상당히 전념하는 아빠인데 성정체성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무관심으로 해석되는 것도 납득이 안 간다. 부인은 아이의 이런 특징을 알고 있었고, 시어머니 생신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고, 본인의 병변으로 고생하며 서운했었는데, 남편에게 아무 말 않다가 실직 즉시 이 모든 사유를 들어 이혼을 통보했다. 문제해결 의지도, 이혼 숙려 과정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냥 주인공을 가장 참담한 무직 알거지 이혼남으로 만들어 구석에 몰기 위한 억지 장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만 쓸란다. 이 정도 B급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요즘 물가에서 상당히 도전적이거나 박애주의라고 본다. 조정석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는 손꼽히는 영화 배우의 재목임을 증명하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엑시트' 류의 코미디 배우로 갈 길을 정한 걸지도. 내겐 볼만한 영화를 걸러낼 키워드가 된 듯도 싶다. 김한결 감독과 조유진 각본가로 함께 기억해야겠다.
그나마 이 영화의 성과라면, 98억이라는 상대적 저예산으로 극장 가뭄을 도왔다는 것. 근데 가뭄이라서 도움이 된 거라 볼 수도 있다. 이에 반해 박정민 주연의 「기적」은 왜 그리 흥행하지 못했나 싶다. 그 영화는 애잔한 그리움과 코믹 요소를 함께 담은 논픽션으로 감점 요인이 딱히 없었는데, 생각할 수록 주연배우의 팬덤이 성패를 가른 것이란 생각 밖에 안 든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쓰였던 지극히 현실적 장면.
주인공이 술마시고 엄마에게 전화해 울면서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느냐"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데, 한국인들의 의식 구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의 삶이 그래도 만족스러웠는지를 남에게 물어야 하고, 만족스러운 여부가 상대적 지위와 벌이 따위로 매겨지고, 이를 위로처럼 받아야 달래지는 낮은 자존감의 표상은 적나라한 우리 나라 국민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린 이래서 준선진국의 행복하지 않은 국민이 되었고 자살이 그토록 많으며 어거지로 사는 인생이 그렇게나 많고 다들 가슴 속 한과 분노가 맺혀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냥 위로 받는 장면이었겠지만,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가장 사회 병폐를 짚는 장면이 탄생힜다.